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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Sep 21. 2024

퍼스널 브랜딩이요? 글쎄요...

목적 없는 시간과 행위를 예찬하며

처음에는 낯간지럽지만 얘도 말하고 쟤도 말하다 보면 자연스레 존재감을 굳히게 되는 단어가 있다. 내겐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이 그렇다. 최근에는 꽤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일종의 이상향이 되기도 했고, 직장인과 백수 사이에서 방황하는 많은 생활인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개념은 단순하다. 한 개인이 스스로를 하나의 브랜드로 정의 내리는 것, 그리고 팬덤을 구축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 사실 낯선 전략은 아니다.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들이 이미 오랜 기간 써먹었으니. 다만 소셜 미디어의 은혜에 힘입어 개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졌고, 기존의 소위 셀럽(Celebrity)비교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탄생을 알렸다.


혹자는 이들이 실체 없는 이미지만 판매한다며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지만, 이러한 평가와는 별개로 SNS를 중심으로 거대한 브랜딩 산업이 구축되었다는 점을 무시하긴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사업 비슷한 거라도 해보려는 이들에게는 상식이 되었으니.


다만 항간의 퍼스널 브랜딩 담론이 의미나 숙고보다는 방법론이나 결과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브랜딩 자체가 마케팅, 나아가 경영학에서 나온 개념이니 뭐 그리 대단한 깊이가 있겠는가. (경영학도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저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이 얼마나 지속하며 유효할 것인가, 그리고 '개인의 삶이 꼭 브랜딩으로 환원되어야 하는가'라는 두 가지 포인트를 짚고 싶다.




1.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


브랜딩은 무엇인가. 떠올리긴 쉽지만 말하긴 어려운 모호한 개념이다. 다만 '일정 기간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00 하면 000 브랜드' 같은 조각난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공통적으로는 메시지, 지속성, 문제해결, 상징 등의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겠다.


훌륭한 브랜드는 작지만 깊은 고민에서 시작한다. 반대로 조악한 브랜드는 크지만 얕은 선전으로 시작한다. 굳이 선전이라는 낡은 표현을 쓴 건 PR이니 자기 어필이니 하는 있어 보이는 단어로 포장하기 어려운 낯간지럽고 어설픈 추월 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무리하게 끼어들었다가 경적 소리에 놀라 뒤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브랜딩에는 깊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몇몇은 운 좋게도 지름길을 타고 쭉 질주하겠지만, 그래봐야 얼마 가지 못하고 또 다른 정체구간을 마주한다. 브랜딩은 숙고와 시도의 결과지, 출발점이 아니다. 애플이라는 거대 브랜드가 차고에서 시작했다는 전설과도 같은 사례를 굳이 짚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가끔 '우리 기술은 세계를 선도할 것이고, 지구인의 삶을 혁신적으로 개선할 것이다'라는 크고 거대한 메시지부터 던지는 기업을 볼 때면 '우선 한 개인의 생활부터 개선해 보시길'이라는 말을 삼키게 된다.


브랜딩은 작게, 그리고 깊게 출발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목적에, 겉치장이 아니라 문제해결에 닿아있어야 한다. 퍼스널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넌 뭘 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하거나 장광설을 늘어놓는다면 아직은 더 예리하게 다듬을 차례라는 방증이다.



2. 개인은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가


개인과 브랜딩의 조합은 철학적, 실존적인 의문도 남기지만 그보다는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얼마 전 브랜딩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는 자신의 콘텐츠 성과를 자랑하며 몇 개 안 되는 포스팅으로 수많은 팔로워를 모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은 수십, 수백 개의 글을 쓰고도 그보다 못한 성과를 내었다며. (어쩐지 찔린다)


그의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 콘텐츠는 가성비(?)에 따라 우열이 가려진다. 적은 노력(적어도 표면적인)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낸다면 더 우월한 콘텐츠라는 거다. 둘, 콘텐츠는 퍼스널 브랜딩과 연결되어야 가치가 있다. (두 번째 인상은 다소 과장이 있겠으나 그가 책에서 제시한 맥락에 빚을 진 결이다)


여기서 논리를 한없이 비약하면 생전 단 2점의 그림을 팔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깎아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나 니체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든 글이 브랜딩을 위해 쓰일 필요는 없다. 글의 결과로 브랜딩이 되었다면 그건 글의 목적이 그러해서가 아니라 글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당연한 얘기지만 퍼스널 브랜딩은 개인의 선택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지속된 숙고와 행위의 결과로 빚어지는 하나의 심상이 브랜딩이라면 그건 쉬이 얻어지지 않을뿐더러,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그래서 브랜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강의나 관련 콘텐츠를 판매하려는 시도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브랜딩이란 그런 게 아니니까.


무엇보다 진정으로 무용한 시간이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걸 알기에 모든 걸 브랜딩의 재료로 녹여내는 건 온당치 못한 태도일 것이다. 그 목적 없음을 걱정 없이 찬양하며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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