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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Nov 07. 2024

디자인 시안(상무님 피드백)수정_최종_최최최종.jpg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임원과 함께 일한다는 것

제목을 써놓고 보니 한 경영서에서 읽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아마 디즈니의 사례였을 것이다) 저자와 대표가 같이 걸어가고 있는데, 문득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램프를 가리키며 자랑스레 말한다. 저것도 자기가 직접 고른 거라고. 사실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다고. 작가는 대답한다. 대표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터치하는 건 좋은 게 아니라고. 그것도 이렇게나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더더욱.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세세한 부분까지 집요할 정도로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그가 '세세한 부분을 챙겼다'가 아니라 '결국 애플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다. 그가 폰트 위치, 모서리의 곡률, 색상까지 하나하나 간섭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면 잡스의 행동은 (100번 양보해서) 회사의 본질에 닿아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CEO를 비롯한 임원진은 잡스가 아니니까.


세세한 디테일과 전체적인 방향성. 업무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두 축이다. 사실 정답은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도 맞는 말이고, '디테일에 매몰되면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말도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다만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닌다면 후자 쪽에 무게를 더 실어야 한다. 그러라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많은 이들이 실무자일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팔을 걷고 나선다.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몇 년 전에 거래하고 있던 A 회사에서 디자인 시안이 계속 반려되는 일이 있었다. 그동안은 무난하게 넘어갔던 결과물도 혹평과 함께 끊임없이 수정요청을 주렁주렁 달고 돌아왔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팀의 임원이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피드백이 좋지도 않았다. 중년의 비(非) 디자이너가 가진 안목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변덕도 심하고 지시사항은 추상적이어서 계속 시간만 잡아먹었다. 자신도 어떤 그림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듯했다.


이는 단순히 일이 늘어난다는 차원을 넘어서 직원의 사기를 저하시키고(어차피 다시 수정해야 하니까), 본질을 놓치고(덕분에 더 중요한 프로모션용 배너 시안은 뒤로 미뤄졌다), 매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프로모션이 런칭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임원'이기에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마음껏 칼을 휘두른다. 자신은 어차피 말 한마디면 되니까. 조직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비효율을 야기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나 또한 가끔 그럴 때가 있어 깜짝 놀란다. 지금도 이런데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면 얼마나 더 심해질까 싶어서.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위임할 줄 알아야 하고,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꼼꼼한 팀장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면서, 동시에 할 일 없는 임원이 수시로 건드리게 되는 지점이다.


임원은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 직원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대단한 비전이 아니라도 좋다. 외부에서 일감을 따오거나, 매출 성과를 챙기거나,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특히 조직이 일정 규모 이상일수록 더 그러하다. 자기가 모든 걸 다 챙기고 싶다면 1인 기업의 사장이 되면 된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큰 그룹의 장이 될 게 아니라. 그건 성격 이전에 그릇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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