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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less conversation Jul 22. 2020

기본기는 늘 중요하다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 2012 

오랑우탄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가 숙취와 함께 무겁게 눈을 뜬 아침

11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10시 반에 체크아웃해야 한다.


뭐라도 뜨끈한 걸 넣어주고 싶은데 영화 시간도 겨우 맞출 판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해장을 대신했다.

술과 마찬가지로 커피가 식물성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한 달 동안 커피를 못 마셨다면 심각하게 우울했을 것 같다.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 


아주 오랜만에 보는 프랑스, 아니 유럽 영화.

누군가 말했듯이 프랑스 영화의 진짜 저력은 코미디에서 볼 수 있다.

영화는 현시대에 프랑스가 직면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을 어렵거나 무겁지 않게, 그리고 위트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소확행을 책임지는 프랑스 과자는 이 영화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영화 보는 내내 체리가 쏙쏙 박힌 클라푸티나 녹진한 까눌레가 먹고 싶었다.


나는 동물성 지방의 맛이 주는 행복감을 완전히 잊고 살 수 있을까?



해양영화제 관계자 분과 함께 지난번에 방문했던 토속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지난번에 눈여겨봐 둔 덕에 비건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많았던 기억이 났다.

두부니 묵이니 거의 모든 걸 직접 만드신다는 말도 들었었다.


버섯들깨탕에 묵무침.

정갈한 기본찬까지... 모두 비건에 심지어 맛도 있었다.

감사합니다ㅠ



출장까지 와서 심지어 얻어먹는 주제에 식당까지 정해서 왔는데 

동석한 non 비건인 분들도 만족하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부산 와서 여태껏 바다 구경도 못했다는 핑계로 해운대를 잠시 거닐었다.

어릴 때도 그랬고, 군대 있을 때도 나에게 해운대는 약간 촌스러운 휴양지 같은 느낌이어서 그 분위기가 매력이었는데 요즘은 홍콩의 마천루나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도시를 보는 것 같아서 영 정겹지가 않다.


발전이라는 이름 앞에 사라져 가는 것들이 요즘 들어 부쩍 그리워진다. 



저녁은 요즘 핫하다는 부산의 비건 식당을 찾아갔다.

자유로움과 약간의 히피스러움이 묻어나는 공간에는 인도와 네팔, 티벳 등의 감성이 배어있었고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느낌의 가구와 오브제들이 눈에 띄었다.


때로는 이런 분위기= 건강한 먹거리 (채식포함)를 지향하는 그 셋팅이 식상하게 다가온다.

불만이라기보다는 이런 고정 관념화된 모습들의 반복이 안타깝다.


음식 맛은 더욱 안타까웠다.

그나마 이곳은 다른 곳에서 시도하지 않는 메뉴들 (예 : 타코, 칠리소스 버섯튀김)이 있어서 비건들에게 인기가 많은 집인데 전반적으로 너무 달고 시거나, 간이 맞지 않거나 하는 기본적인 밸런스의 부재가 아쉬웠다.


고기 없이 낼 수 있는 맛의 한계와 맛 자체의 균형, 재료 간의 조합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전에도 어떤 비건 식당에서 비슷한 생각에 빠져 음식을 욱여넣고 있을 때 

옆 테이블 손님들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너무나 감사하게 나와 같은 메뉴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입맛과 취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도 세상에 그보다 더 맛깔난 음식들을 많이 먹어보았음은 분명하다. 

그만큼 맛있는 비건음식을 파는 곳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건강한 음식이 심심하고 밍밍하고 자극이 순한 음식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양한 색깔의 공간에서, 양념에 기대지 않고 맛의 원리와 본질에 집중 하고, 때로는 괴짜같고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비건 식당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머지않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물론 그건 나 같은 직업인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비건이라도, 비건이라서 행복하다고 느낄 만한 먹거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건 그렇고 다음번 부산에서는 무얼 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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