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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표 Aug 18. 2023

김한길 연출 경주시립극단의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

대한광복회와 세금 탈취 사건을 ‘사복무언(蛇卜無言)’의 불교사상으로.

올해 광복절 78주년을 맞아 문화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개최되고 있다. 경주시립극단의 예술감독 김한길 작가는 일제강점기 실제 있었던 경주 효현교 사건을 모티브로 <1915 경주세금 마차사건>(2023)를 ‘14회 국공립극단 페스티발’(경주예술의 전당)을 통해 재공연하며, 지역 콘텐츠 개발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었다. 신라 천 년의 도시 경주 무열왕릉을 지나 소티고개를 넘어서면 법흥왕릉이 보인다. 그 맞은편에 효현교가 있다. 1915년 12월 14일, 효현교에서 대구로 향하던 마차에는 경주·영일·영덕 3개 군에서 거둬들인 세금 8700원이 실려있었다. 현재 화폐가치로 치면 약 3~4억 원으로 추산되는 금액인데 그 세금이 털렸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경주아화간(慶州阿火間)에서 관금봉적(官金逢賊)>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면서 알려졌다. 일본 경찰은 대대적으로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잡히질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되고 국권을 빼앗긴 지 5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춘천거기>의 작가 김한길대한광복회 활동과 세금 탈취 사건을 경주 거기로 풀어내


<춘천, 거기>, <삼도봉 미스터리>, <임대아파트>, <장군슈퍼> 등 소시민들의 삶과 인생이야기를 다루어온 예술감독 김한길 작가는 2016년도 경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뒤, 올해 7년째 연임을 이어오고 있다. <삼도봉 미스터리>를 시작으로 <유쾌한 하녀 마리사>, <행복 배달부 우수씨>, <지금도 가슴 설렌다>, <장마>, <귀로>, <악극, 바람아 구름아> 등 13편의 작품을 각색하고 연출했다. 동아시아 문화도시 개폐막식과 신라문화제 개막식 대본을 집필하는 등 경주 공연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창작만 고집하지 않고 경주시립극단이 지역 공공단체로 연극의 대중성을 회복하는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다. 지역 기반의 다양한 공연 소재로 작품 개발을 주도적으로 해왔으며, 대중적인 작품으로 관객들이 연극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경주시립극단은 관객들과 호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한길 작가는 현실을 배치하는 감각이 탁월하면서도 대중적이고, 공연예술 특유의 감각을 무대에서 놓치지 않는 작가이자 연출가로 불릴 만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은 올해 광복절을 즈음하여 지역 소재를 발굴해 실제 사건의 미세한 단서를 드라마적 구성으로 살려낸 작가의 감각과 무대로 배치해내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그의 전작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소시민의 극 중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사랑, 애환, 삶과 인생이 키워드로 관통되고 극 중 인물들의 일상적인 화법(대사)은 현실의 삶과 동일화된다. 극화되는 풍경은 때로는 아프면서도 견뎌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이번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도 실제 일어난 사건을 무대 위에 극화시켜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대한광복회 독립운동가들의 국권 회복의 절규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경주 세금마차 사건은 발생 몇 년 뒤, 대구 달성공원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대한광복회’가 만주 독립군 기지 지원금을 위해 벌인 독립 항일운동이었다는 사실이 울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는 <고헌실기 약초가>를 통해 밝혀진 실화이다. 당시 광복회 대원 우재룡이 효현교 목제 다리를 부숴 우편마차가 다리를 피해 하천을 건너게 하고, 권영만이 환자인 것처럼 속여 마차 뒤 칸에 타고 있다가 세금을 탈취해 달아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게 된다. 이를 반영한 연극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은 대구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가 국권 회복을 위해 계획한 치열한 독립운동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를 중심으로 하는 대한광복회의 항일운동 과정을 녹여내면서 당시 재무를 담당했던 경주 최부자집의 독립운동가 최준(권오성 분), 친일 부호 처단과 무기 공급을 담당한 독립운동가 우재룡(오주환 분), 군자금 조달을 담당한 권영만 선생(이협수 분)이 극 중 인물로 등장해 항일운동의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당시 허가제로 운영되면서 세금을 거둬드린 경주 권번(券番) 기생들 이야기와 일본 경찰이 되고 싶었던 조선인 순사 영권(이인호 분)을 등장시키면서도, 세금마차의 마부를  『삼국유사』 <의해> 편에 실려 있는 ‘사복무언’의 신라 민중 불교 설화의 인물 ‘사복’을 극 중 인물로 설정해 세금 탈취 마차사건을 불교사상의 업(業)과 윤회 사상으로 구성한 점이 흥미롭다. 신라 불교의 도시 경주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 사복이 환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의 업은 불교의 윤회를 통해 돌아온다는 점을 김한길 작가는 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 사복무언의 신라 불교 설화와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



무대는 전통 복층 미닫이문 구조로 되어 있다. 한옥의 근대적 분위기이면서도 복층 앞면과 뒤편에는 극 중 장면의 분위기와 시공간의 변화를 영상으로 투사해 1915년 강제병합 5년이 흐른 시간으로 돌아간다. 공연은 “대한광복회는 1915년 음력 7월 15일 경주를 중심으로 한 본부조직 한말 의병과 계몽운동 계열인 풍기광복단과 댁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 인사가 합류되어 결성하였다”라는 자막이 비추면서 시작된다. 고헌 박상진, 최준, 백산 우재룡, 각헌 권영만 등 당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군자금 조달 계획을 털어놓고, 기생들은 게이샤 흉내를 내면서 국권 강제병합의 시간으로 분위기를 돌린다. 극 중 인물들의 활동 공간이 경주와 대구, 경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배우들은 날것의 지역 사투리로 인물을 표현하고 시대적 상황을 재현한다. 일본 순사가 되어 있는 영권(이인호 분)이 할머니 매향(송정현 분)을 찾아오고 마차로 우편배달을 하는 사복(전봉호 분)도 등장한다. 일본 경무부 부장인 타츠우마(이명수 분)에게 잘 보여 경성 일본식 극장에서 공연하며 일본 선전대 역할에 들떠 있는 기생을 향해 반월(강유경 분)은 “일본군들 앞잽이 하라 이 말이가” 라는 말로 시대적 상황을 그려낸다. 최부자 집에 모인 우재룡, 권영민에게 최준은 “사흘 전에 토지세를 걷어 갔으니 수일 안에는 세금이 우편 마차에 실릴 깁니더” 라며 세금 탈취 계획을 털어놓고, 권영민은 “이번 세금 탈취 작전을 시작으로 친일 부호 처단에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명령입니다”라며 총사령관 박상진의 말을 전달한다.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대한광복회의 항일운동 활동과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고군분투하는 분위기를 실감있게 투영하면서도, 마차를 몬 일본 마부의 불확정성을 일본인 이름 카오루로 불리는 허구적 인물 사복으로 설정한다. 사복은 석굴사를 발견하지만, 총독이 석굴사를 경성으로 옮기라고 명령하자 그 충격으로 말을 잃게 된 인물로 설정되는데, 이는 발칙한 작가적 상상이라 하겠다.


극은 석굴사라는 가상의 설정과 충격으로 말을 잃게 된 사복을 통해 불교 설화를 차용하면서 불교의 ‘윤회사상’을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과 국권을 빼앗긴 슬픔과 독립운동가들의 국권 회복의 염원으로 연결한다. 어찌 보면 당시 경주와 대구, 경북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과 경주 시민들은 불교의 믿음으로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이기고 국권회복을 기다려야 하지 않았을까. 마치 불상을 숭배하는 설화의 믿음처럼 말이다. 김한길 작가는 초연 공연에서 경주의 세금 탈취 장면을 사건 시간의 뒤로 배치해 일본 순사인 영권(이사노죠)에게 설명하는 장면으로 그렸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상황을 재현한다. 세금 탈취 계획을 알게 된 사복은 마차 출발 시간을 알려주고 장면은 1915년의 경주 세금마차 사건으로 되돌린다. 달리는 마차를 세우고 권영만이 나타나 위급한 환자인 것처럼 마차에 올라탄다. 효현교를 지나갈 때 쯤 우재룡에 의해 부서진 목재 다리를 돌아 마차가 하천을 건너는 사이, 우재룡에 의해 세금이 탈취되는 장면이 그려진다. 평면적으로 흐를 수 있는 그날의 사건을 극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세금마차 탈취 사건을 조사하는 타츠우마의 지시로 사건은 재구성된다.

경주 경찰서 장면은 사복을 취조하며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이다. 세금 탈취 계획을 알고 있는 사복이 독립운동가들을 기다렸다는 듯 말(馬)을 천천히 달리는 장면과 세금 탈취를 묵인하는 장면이 그려지면서도 그날의 사건은 범인을 찾을 수 없는 미제로 남게 되고, 타츠우마는 사건을 종결하라고 지시한다. 극 후반 타츠우마, 오구라, 권영만, 상헌(권예진 분), 매향, 이사노죠가 모여 ‘사복무언’의 설화를 인형극으로 재현하는데,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 문화재 수천 점을 일본으로 반출해 오구라 컬렉션을 이룬 오구라 다케노스케를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오구라는 석굴사를 발견한 사복이 우편마차의 마부과 다름없다고 말하고, 타츠우마는 사복이 조선의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응대한다. 사복을 범인으로 직감하면서도 『삼국유사』의 사복이야기에 공감하는 타츠우마의 태도에서, 오구라처럼 석굴사와 조선문화재에 관심을 보여온 타츠우마의 조선문화재에 대한 인정과 욕망이 드러난다.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사복이 범인임을 확신한 조선인이면서 일본 경찰이 된 이사노죠를 향해 “내가 왜 조선의 춤과 노래에 빠졌는지 자네 알고 있나?”라는 말에서도 오구라와 타츠우마처럼 조선문화재에 대한 선망과 열망이 읽힌다.


독립운동가들의 국권회복의 뜨거운 함성....작가의 상상력


오구라처럼 사복을 통해 조선의 불교문화재를 탈취하려는 타츠우마의 노쇠한 욕망이 드러나고, 무대는 108년 전 매일신보 여기자가 취재한 경주 세금마차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경주 아화간(慶州阿火間)에서 관금 봉적(官金逢賊), 8,700원 분실, 도적은 조선사람’이라는 빛바랜 신문 지면을 스크린으로 비춘다. 이어 ‘1916년 운산 금광 현금 수송 마차’ 습격 사건과 ‘1917년 칠곡군 북삼면 장승원 흉한의 총을 맞아 횡사’의 실제 사건의 사진이 투사되고, 1918년 대한광복회에 의해 충정남도 도고면장인 친일파 박용하를 처단한 의열투쟁의 사건도 비춘다. 무대 스크린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 헤이그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 시민회의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신민회 회원들, 광복회 회원들과 유관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의 얼굴로 채워지고, 108년 전 경주에서 일어난 세금마차 사건은 오늘에도 여전히 뜨거운 독립운동 정신으로 살아있음을 환기하며 막이 내린다. 이번 경주시립극단의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극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허구적 인물 사복을 통해 ‘사복무언’의 신라설화를 불교 윤회사상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설정하고, 오구라, 타츠우마를 통해 불교 문화재 강탈의 역사도 환기했다. 실제 사건 속 인물과 설화 속 허구적 인물을 설정하여 극의 개연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지역 소재 콘텐츠 발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경주시립극단의 배우들도 안정된 무대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연극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은 지역 콘텐츠 발굴 레파토리 작품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만하다. 아쉬운 점은 세금탈취 사건의 재구성과 사복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그 외 이야기가 다소 평면적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인형극으로 재현된 사복의 설화, 대한광복회의 독립운동사, 세금탈취 사건, 오구라의 설정 등 연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감각적인 설정들이 눈에 띄는데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해 아쉽다. 특히 설화 부분이 아쉬운데, 프롤로그는 인형극으로 재현되는 사복무언 이야기를 장면으로 담은 뒤 경주 세금탈취 사건의 역동적인 장면으로 연결해 대한광복회와 독립운동 이야기를 더 확장해 연극적으로 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사복무언의 이야기를 실제 사건과 연결한 작가의 역량과 무대로 풀어내려 한 연출 감각이 경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있는 김한길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올해 국공립 페스티발 참가 단체는 수원시립공연단의 <몽연>(김정숙 작, 예술감독 권호성), 인천시립극단의 <전명출평전>(백화룡 작, 박정석 연출), 경산시립극단의 가요뮤지컬 <울고 넘는 박달재>(김상열 작, 이국희 연출, 예술감독 이원종), 부산시립극단의 <미운오리새끼>(안데르센 작, 김지용 작사·연출, 신서영 각색), 목포시립극단의 가족뮤지컬 <보물섬>(각색·작사 민선이, 김재영 연출), 포항시립극단의 <펭권> (창작집단 독 작, 신재훈 연출), 경남도립극단의 <앙금당실 토별가>(조현산 연출, 박인혜 각색·작창), 경주시립극단의 <1915 경주 세금마차사건>(김한길 작·연출) 등 8개 작품이 경주예술의전당에 올려졌다.     


▏ 김한길 작가는.     


혜화동 1번지 4기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경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작, 연출을 해오고 있다. 작,연출한 <장군 슈퍼>로 한국예술위원회 신진예술지원에 선정돤 바 있으며 <슬픔 혹은>,<임대 아파트>로 PAF 극작상과 대표작<춘천 거기>(2006)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연출작으로는 <라이어2>를 비롯해 12개 작품이 있으며,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등 20여편을 쓰고 연출해왔다. 경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후에는 연극과 창작오페라등 22개 작품을 공연하고 연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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