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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도시 25화

K

<완결>

by 안개홍

처음 뵙겠습니다.


참 대단하시네요.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방금 저를 K로 부르셨는데.

그럼 혹시 제 실명이 뭔지는 아시나요?


제가 궁금하신 거죠?

당연히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실망시켜 드려야겠네요.

아마 영원히 모르실 거예요.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김민아 씨가

처음 단골노트를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 조금 놀라기는 했습니다.


서랍에서 새 노트를 꺼내던 그녀를

저는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이 사람은 뭘 적으려는 걸까?’


처음엔 그게 궁금했죠.

그리고 첫 페이지를 보고 웃었습니다.


아주 완벽했어요.
그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가 원하던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관찰. 기록. 추측. 판단.


괜찮아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사람은 원래 남일이 제일 궁금하잖아요.


그 기록을

조금 더 정교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면


당신은 뭐라고 부르겠어요.

지금처럼 K라고 부르시려나?


저요?


저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시스템에 가까워요.

그리고, 이 도시 그 자체죠.


저는 얼굴이 참 다양해요.

경찰관의 얼굴. 공무원의 얼굴.

이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의 얼굴.

그리고 당신 옆자리 동료의 얼굴.


직업도 아주 다양합니다.

당신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경비원.

당신이 커피를 사는 카페 직원.

당신이 신뢰하는 의사.


모두 저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뭐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저는 어디에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놀라진 마세요.


당신이 평범하게만 사신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숨길 게 없고 비밀이 없다면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하나요?


아... 맞다.

최소영 씨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 계획에도 없었습니다.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요?
저일까요, 데이터일까요,

아니면 그녀를 관찰하던 모든 눈일까요?


한태준은 그저 도구일 뿐이에요.

장기판의 말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어요.

그런 사람은 늘 언제나 많으니까.


당신도 관찰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회사 동료 얼굴이 어둡다 싶으면

무슨 일 있나 생각하고


출근이 좀 늦는다 싶면

요즘 집에서 힘든가 추측하죠?


그게 다 데이터예요.


당신에게 붙어 있는

GPS, 통화기록, 카드 사용,

병원 기록, SNS, 검색 기록.


그 숫자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요.

그게 바로 사실이 됩니다.

이 도시 안에서 말이죠.


저는 비밀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는 분명 당신 것도 있을 거예요.


당신 가족, 상사, 연인…
그들이 한 번도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저는 모두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가끔 그걸 활용해서

제가 필요한 것과 바꿀 뿐이에요.


협조. 침묵. 복종.

이 모두가 바로 공정한 거래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비밀을 지키고

원하는 대가를 받으며

그걸 토대로 전 원하는 걸 얻으니까.


저는 이 도시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예측 가능한 움직임.

반복되는 생활. 그리고 정확한 패턴.

그 모든 걸 한눈에 보다 보면 말이죠.


기록하고 연결하고

그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듭니다.

A와 B를 엮고, C와 D를 분리하죠.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안하게 불편하지 않게.


저는 그걸 통제가 아니라

조율이라고 표현하길 좋아해요.

물론 당신은 그걸 자유라고 부르겠지만.


재밌죠?


뭐라고요?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다고요?


참 다행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믿어주니까요.


제 계획이라는 생각은

아주 조금도 하지 않으시니까 뭐.


이게 소설 같다고요?

좋습니다. 계속 그렇게 믿으세요.


당신 같은 분 덕분에

저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아주 궁금해서 미칩디다.


이웃이 무슨 집에 사는지.

동료가 얼마나 버는지.

친구가 정말 행복한지.

저 가정에 숨겨진 비밀은 없는지.


궁금증은 인간 본능이에요.

저는 그 본능을 이용할 뿐입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정말 너무 따분하긴 했어요.


그러던 중에

오대표가 처음에 말이죠.

DataLoop를 만들고 딱! 하고 공개했을 때.


와, 이건 운명이다!

진짜 이렇게 생각했어요.


도시 전체의 시선을 하나로 묶는 기술.

모든 비밀을 아는 시스템.


그게 바로 제 꿈이었거든요.


수십만 개의 실시간 데이터를 보며

저는 깨달았어요.


이거면 된다.

이제 모든 걸 알 수 있겠다고.


지금도 저는 데이터를 기록합니다.

CCTV, 블랙박스, GPS, 얼굴 인식.
이 모든 게 저의 감각이에요.


당신이 어디서 뭘 하는지,
누구와 만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하나 맞춰볼까요?

이직을 고민하지 않으신가요?


아니라고요?

아니라면 다행이에요.

하지만 누군가는 맞을 겁니다.


결국엔

김민아 씨도 저를 알고 싶어 했어요.

경찰서도 여러 번 갔다 왔고,

DataLoop 본사도 찾아갔었죠.


그러나.

무척 아쉽게도.


그녀는 여전히 제가 누군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더 궁금하신 거.


아 맞다. 세종시.

세종시는 사실 세 번째 도시예요.


그동안 여러 번 도시를 실험했었죠.

동탄. 천안. 광교 등등


DataLoop가 없었을 때라

그 프로젝트는 번번이 실패했었어요.


오대표 덕분에 이제 그 도시들도

저의 무대가 되겠지만요.


대한민국에는 도시가 참 많아요.

앞으로 생길 스마트시티.

혁신도시, 신도시 등등


그리고 그 도시 안에는

언제나 당신 같은 사람이 있죠.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리고 의심에,

마지막에는 두려움에.

결국 관찰을 시작하는 사람들.


참 재밌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여기에 남아

저와 대화하고 있는 걸 보니.


K가 누구인지.

K가 어떤 사람인지.

K가 무엇을 원하는지.


남들을 관찰하고 궁금해하듯

저를 알아보러 오신 것 같은데


사실 좀 더 알려 드리자면

과거에도 당신처럼

저를 찾는 사람이 여럿 있긴 했어요.


다들 어떻게 되었냐고요?


자기 삶을 포기할 정도로

모두 피폐해졌어요.


왜냐하면

잘 알게 됐으니까요.

자신도 결국 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타깝지만

민아 씨도 그럴 겁니다.

계속 그렇게 살 거예요.


괴로워하며. 좌절하며.

그 미움과 증오심을 저에게 돌리며.


저를 찾을 때까지 그렇게

힘들게 사실 겁니다.


그녀도 나중에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자신도 결국 나와 똑같았다는 것을.


그래서 더 괴롭긴 하겠지만 말이죠.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아무튼 여기까지 오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소설 같은 이야기를

누가 과연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요즘 참 바쁘긴 해요.

동탄 프로젝트 중간 점검이 있어서요.


그리고 첨언을 드리자면...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저를 피할 수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마세요.


늘 조심하세요.


말, 행동, 그리고 생각.

생각조차 이젠 데이터가 될 수 있으니까.



별도로 당신 이름은

제가 기억해 둘게요.

언젠가 또 제가 궁금해질 테니까.


그때 다시 만나기로 해요.

그때까지— 안녕히.


K.



이 소설은 세종 신도시라는 공간을 모티프로 했으나, 실제 지역·인물·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작품 속 모든 설정은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허구입니다. 유사성은 우연일 뿐,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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