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서울 자가에 살지 않고 대기업을 다니지는 않지만

by 안개홍


몇 년 만에 이렇게 깊이 빠져든 드라마가 있었나 싶다.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라면, 가정을 꾸린 아버지라면, 이보다 더 가슴 저미게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는 없을 것 같다. 직장인의 애환과 삶을 소소하면서도 섬세하게, 그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낸 작품이었다.


물론 드라마였기에 현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다. 김부장이 지방 전선 공장 안전관리자로 좌천되었을 때, 일면식도 없는 그곳 사람들을 위해 명퇴를 결정하는 장면은 조금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내년이면 문을 닫을 공장, 그곳에 남을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한 선택이라는 설정이 다소 무리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모든 순간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평소보다 이른 오후 시간에 퇴근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 퇴직 통보를 받았음을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수고했어"라며 꼭 안아주던 그 따뜻한 손길. 기가 꺾인 남편을 위해 일상 속 작은 배려로 힘을 북돋아주려는 가족들의 모습이 애잔하고 고달프면서도, 마치 내 곁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사연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직 김부장을 100% 이해할 나이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40대에 접어들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나에게도 저런 위기가 찾아올 수 있겠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니, 이미 나는 깊이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어땠을까. 저 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셨을까. 쉬고 싶고, 상처받고, 아프고, 더러운 현실이라도 버텨내야만 하는 그 무게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리고 직장에서 겪은 모진 일들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으려 애쓰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소주 한 잔에 털어내려 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독하고 버거운 것이었을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퇴직을 하고 나서야 김부장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았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버텨온 건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를 빛나게 해준 것, 그가 중심에 설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가장으로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가족과 아내였다는 것을.


드라마를 보는 것이 결코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타인의 삶을 마주하고, 다가올 위기를 예견하며, 그 속에서 미리 공감하고 배우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면, 설령 드라마의 구조나 등장인물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작품이 전하고자 한 본질이 시청자의 마음에 닿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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