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소비 가치에 대한 기준과 관점 재고
나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스타그램 안에 향연 하는 갖가지 사진 속에서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싸고 귀중한 것들과 해외명소를 보고 있자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가를 다시금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가 많다. 한마디로 '현자 타임'이 와버린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크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괜스레 자책감과 무력감이 든다.
무력감. 그 속에는 여러 가지의 감정이 얽혀있다. 이를테면 완벽한 지출 통제에 대한 불확신과 같은 것들이다. 그 확신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면 내면의 또 다른 내가 속삭이기 시작한다.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속삭임은 점점 커지고 우렁차 진다. 그리고 이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성을 마비시켜 버린다.
"젊을 때 꾸미고 즐겨야지, 과연 나이 먹으면 네가 지금처럼 온전한 모습일 것 같아?"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의 책,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의 구매 결정은 소비자의 뇌 속에 잠재된 내적 욕구와 동기가 주변 세계에 딱 맞는 유효 대상을 만나면 자극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말인즉슨, 개인은 집단 혹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력을 주고받는 사실을 말한다. 사회적 관계가 지속될수록 개인의 사고 과정에는 타인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한다. 그리고 좋은 것과 귀중한 것들에 대한 가치 인식의 틀이 형성된다. '모든 이가 갈망하는 것들은 아주 귀중한 것'이라는 사고의 틀이 굳어지기 시작한다.
현대사회에는 가치의 우위를 끝없이 비교해가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 짓는다. 좋은 것 중에서도 비교적 더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서열화한다. 서열화를 통해 만족을 느낀다. 타인이 소유하지 못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 소유하지 못한 가치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그로 인한 좌절감. 그 복잡하고 다난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절제력을 잃어간다. 사람들은 모두가 부자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소득 범위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고 사치를 과시한다.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 오해한다.
사회적 지위와 삶에 대한 가치와 만족감은 결국 지식, 앎에 있다. 에릭 바인하커의 명저, <부의 기원>에도 분명하게 부의 기준과 원천은 지식에 있다고 밝혔다.
고전적 경제학의 원리로 돌아가는 현재의 상황은 효율적 재분배의 역할만 충실할 뿐이다. 나의 소득과 나의 재산은 분명 다른 개념이다. 자신의 위치와 현실을 직면할 메타인지가 필수다. 목적의식을 갖고 절제하는 생활의 필요성은 필수 덕목이다.
물론 절제는 힘들다. 사회적 영향력과 자아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제한한다. 또는 오랜 노동에 대한 보상심리와 절제에 대한 인내심으로 인해 마음속 깊이 다졌던 신념까지 흔들릴 수 있다.
내가 아는 진짜 알짜배기 부자들은 소비에 둔하다. 부자처럼 보이려 하지 말자. 소유한 것에 감명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성취하는 과정에 대해 감명을 받자.
나의 재정적 소비와 지출에 대해 타인이 얼마 큼의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천지차이. 그런 영향을 계속 허용할지 말지 의식적인 인지와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나태해진 내 자아와 지적 호기심에 대한 반성.
항상 내가 첫째 아들에게 세뇌시키듯 하는 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 끝을 알고 있다.’
그리고 처음 달라지기 시작한 그날.
멘토에게 배운 교훈 복기 또 복기.
‘가족 빼고 다 바꿔야 한다. 너, 너를 둘러싼 주변 환경. 그리고 주변 지인. 모두 다 바꾸려 해라. 주변에 영향력 잇는 인맥을 두려고 노력해라. 네가 사고하는 방식과 네가 고민하는 문제와 네가 원하는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인맥을 갖기 위해서는 그 친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 즉, 사람들이 너의 능력을 필요로 해야 한다.’
내적 동기부여
완전한 변화. 습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기적 이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