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먹는 자는 말이 없다.
한 끼를 먹어도 맛있는 걸 먹자.
집에 올라가면 꽤나 자주 듣는 소리다. 맛없는 건 쳐다보지도 말고, 알아서 걸러서 먹으라는 뜻이렸다.
어릴 적부터 이 가훈 아닌 가훈에 따라, 맛있는걸 꽤나 많이 먹었다.
자식 입에 넣는 거라면 돈 상관없이 사주시던 부모님 덕에,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동기가 사주는 스시야를 다녀왔다.
구루메 스시는 논현역 근처에 위치하고, 가격은 9만 원(디너_포잉에서 예약 시 10% 할인). 업장 분위기는 굉장히 차분하고 깔끔했다.
1. 시작은 일본식 계란찜 자완무시
- 따뜻한 계란찜에 게살이 차갑게 올라갔고, 안에는 표고버섯 정도가 들어있었다. 맛은 무난했지만, 개인적으로 두 재료 간 온도 감이 맞지 않아서 차라리 게살도 조금 따뜻하게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2. 히라메(광어)_선어
- 다시마에 숙성된 형태로 2 pc가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다시마 향이 조금 과했고, 숙성회의 풍미보다는 쓴 맛이 많이 나서 아쉬웠다.
3. 참다랑어(지중해산)
- 와사비가 올라간 부위는 주도로, 트러플이 올라간 부위는 붉은 속살이라고 하셨는데 어느 부위인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참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역시나였다. 주도로는 한 면만 야부리 해서 주셨는데, 그렇지 않은 면이 약간 질긴 감이 있었고, 붉은 살은 혈향이 강했다. 같이 갔던 친구들은 잘 먹은 것으로 봐서는 취향이 달랐던 듯.
4. 가다랑어(볏짚을 태워서 타다끼 한 형태)
- 가쓰오 타다끼에 양파를 올렸다. 식감은 괜찮았지만, 가다랑어 특유의 육수 맛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5. 전복
- 전복과 내장 소스에 샤리를 넣어서 주셨다. 전복은 꽤 큼직한 사이즈로 굉장히 적당하게 삶아졌고, 게우 소스에는 게살을 넣으신 건지 부드럽고 비린 맛 하나 없이 고소했다. 샤리는 비벼서 김에 싸 먹을 수 있게끔 주셨는데, 츠마미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6. 미소시루와 까치복 가라아게(꽈리고추를 곁들임)
- 미소시루는 익숙한 그 맛이었고, 까치복 가라아게는 약간 느끼할 뻔했지만, 꽈리고추의 매운맛이 잘 잡아주었다고 생각한다. 튀김옷도 간이 적절해서 맛있었다.
8. 참돔
- 사실 앞에 첫 스시로 능성어가 나왔는데, 깜빡하고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샤리의 풀림이 좋고, 공기가 많아서 아주 부드럽게 먹을 수 있었다.
9. 금태
- 충분히 기름지고 맛있었다. 옆에 같이 간 친구는 장어를 못 먹어서 금태를 그 후 식사 동안 두 번이나 더 먹었는데 부러웠다.
10. 단새우 + 성게 소 + 김
- 단새우(아마에비)와 우니(제주도 산)에 김을 감싸서 주셨다. 김이 입천장에 붙었다는 후기가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고 깔끔하게 넘어갔다. 아 그리고, 손을 닦는 수건을 따로 비치해주지 않으셔서 눈치 보다가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먹었다. 다음부터는 달라해야지.
11. 한치
- 한치에 유자를 갈아서 올려주셨다. 한치의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유자와 안에 들어간 와사비가 과해서 전반적인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 그리고 이 피스 전까지 샤리 양이 적당하다가 갑자기 많아져서 입에 밥이 조금 남았다.
12. 아카미(쯔께)
- 아카미를 간장에 절여서 주셨다. 이후에도 참다랑어 한 피스가 더 나오는데, 참치를 워낙에 싫어해서 다음부터는 바꿔달라고 주문해야겠다. 간은 적절하고 좋았으나, 비릿한 혈향이 남았다.
13. 오도로
- 기름이 많아서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질긴 부위가 있어서 쉽지 않았다.
14. 우나기(민물장어)
- 한번 굽고, 졸이고, 다시 구워서 만들었다고 설명해주셨다. 이때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설명을 해주셨는데, 네타에 대한 굉장히 다양한 설명을 해주셔서 즐겁게 들었다. 맛은 우리가 아는 그 맛.
15. 잿방어
- 제철의 방어보다 기름도 많고 가격도 세 배 이상 비싸다고 한다. 서걱거리는 식감이 좋았고, 적당히 기름져서 맛있게 먹었으나, 여러 번 생각나는 맛은 아니었다.
16. 줄전갱이(시마아지)
- 이때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잿방어와 비슷한 식감이었다. 이 피스가 또 갑자기 샤리가 많아졌었다.
17. 가리비 관자 + 우니크림
- 첫맛은 굉장히 맛있었다. 우니 크림은 부드럽고 달달했고, 가리비도 달달하게 먹기 시작했었지만, 끝 맛으로 갈수록 관자의 비릿한 맛이 강해져서 끝 맛이 좋지 못했다.
18. 카이센동(연어알 + 참치살 + 성게 소)
- 전에 나왔던 아마에비에는 제주도산 우니를 넣어주셨고, 카이센동에는 러시아산 우니를 넣어주셨다. 비비고 있는데 맛을 물어보셔서 맛있었다고 거짓말할 뻔했다. 비벼서 김에 싸 먹으라고 두 장을 주셨는데, 맛있게 먹었다.
19. 붕장어(아나고)
- 식사의 끝을 알리는 아나고가 나왔다. 잔가시 없이 부드러운 맛이었고, 전체적으로 크기가 커서 입안이 꽉 차는 맛이었다.
20. 교꾸
- 계란에 새우살 등 여러 재료를 넣고 구웠다고 하셨다. 일본에서 일을 배울때는 이것만 3년 이상 배웠다고 하셨는데, 적당히 부들부들하고, 조화로운 단 맛이 느껴졌다. 카스테라와 같은 결의 단맛이 느껴졌다. 자부심 있으실 만한 듯.
21. 녹차 아이스크림 + 팥
- 진짜 맛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적당히 달고, 팥과 너무 잘 어울렸다. 이런 말씀드리면 실례겠지만 손을 멈출 수 없는 맛.
22. 시메 사마(고등어)
- 이러고 끝난 줄 알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고등어 좋아하시나요?’ 여쭤보셔서 ‘네!’ 했더니 주셨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생선이라서 드릴까 말까 고민하셨다는데, 참치 빼고는 가리는 어종이 없어서 맛있게 먹었다. 물론 약간 비렸다.
이렇게 스물두 가지 음식이 나왔다.
총평 : 우선 셰프님 접객이 너무 기분 좋았다. 세 명이서 대화하게 중간중간 자리를 비켜주셨고, 생선에 대한 설명도 디테일하고 재밌게 풀어주셨다. 샤리도 어느 유명 유튜브 후기를 보니까 강하지 않은 샤리라고 평하셨던데, 정확한 것 같다. 샤리가 질지도, 되지도 않고, 간도 세지 않아서 내 취향이 맞았다. 니기리도 아주 부드럽게 해 주셔서 풀림도 좋았으나, 가끔 밥 양이 변동이 심한 순간이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인 당 9만 원의 값어치를 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고 할 것 같다. 절대 맛없게 먹지는 않았지만, 아주 맛있게 먹지도 않았던 것 같고, 이게 단순히 처음으로 가족 외의 사람들과 가서 느낀 어색함 때문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음 주에 스시진수를 방문할 계획이라, 그것까지 먹고 비교해서 평가해보려고 한다. 맛있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