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기증자분께 감사드립니다.
*본 글은 전공 과목을 소개하는 글의 일환으로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전공이 뭐에요?’
‘아 의대 다니고 있습니다.’
‘오 그럼 해부해봤겠네요 어때요? 무섭지 않았어요? 전 원체 피를 못보는 성격이라.’
의대생의 대화 레퍼토리 No.1을 차지하는 대화다. 여기서 해부를 아직 안해본 예과생은 멋쩍게 ‘제가 아직 예과생이라서요’ 라고 대답하고, 본과생은 ‘그냥 그래요’ 식의 대답을 하게 된다.
이렇듯 해부학은 의대생의 상징적인 과목이자, 첫 본과 과목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에게도 역시 가장 인상깊었던 과목으로 이제 해부학에 대해 알아보자.
과목은 크게 [필기공부] + [해부 실습]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우리 학교 기준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교과서를 미리 배부하고 그것으로 알아서 자습을 해오는 식으로 필기 공부가 대체되었고, 오로지 해부 실습만 이루어졌다.(그마저도 교수가 수업에 있던 적이 거의 없다. 즉 하루 종일 자율실습이라는 뜻_근.무.태.만). 따라서 오전 8시에 해부 실습이 시작되고, 오후 10시~새벽 2시 사이에 해부 실습을 종료했다. 물론 그 시간 내내 실습실에 있지는 않지만, 하루 최소 10시간 이상은 실습실에 들어갔던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약 한 달 정도를 지냈고, 두 번의 필기시험과 한 번의 땡시를 보고 나면 과목이 마무리되었다.
- 해부 실습
처음 들어간 실습실은 굉장히 무서운 분위기인데, 교수님이 워낙에 무서운 분이시라고 소문나기도 했고, 해부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실습실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메스, 가위, 정, 망치, 전기톱, 해부대, 갈고리, 목침, 걸레, 포르말린(보존액), 장갑, 마스크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외에도 개인 가운을 가져와야 했고, 손에 냄새가 배는 것을(정말 지독하게 밴다) 방지하기 위해 핸드크림 등을 챙겨서 들어갔다. 카데바(시신) 한 구에 5~6명 정도가 붙어서 해부를 하게 되는데, 준비되면 카데바를 앞에 놓아주신다. 보존액이 들어있는 비닐을 열고 카데바를 꺼내놓으면 이제 실감이 되기 시작한다. 카데바 옆에는 생전 고인의 이름, 사망 나이, 질환 등이 써있고, 학교의 종교 여부에 따라 기도 등을 하고 해부를 시작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해부 실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한다. 그냥 자르면 되는거 아닌가? 뭐가 힘들고 뭐가 어려운가 싶겠지만, 실습은 수십년 넘게 해부를 하신 교수님들도 어려워하시는 부분이다. 해부를 하는 목적은 ‘필기 공부에서 배웠던 것을 확인하는 작업’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미 해부 지식을 가진 상태에서 들어가기 때문에, 이제 남은 건 직접 배운 구조물(근육, 신경, 정맥, 동맥, 특수 구조물 등)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어렵다. 배울 때는 여기 있다 라고 배웠던 부분들이 실제 카데바를 열어보면 어디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또 책에 있는 것처럼 명확환 위치 관계에 있는 구조물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미묘하게 엉켜있어서 뭐가 위인지 아래인지를 판단하기 어렵고, 인체는 3D이기에 어느 깊이에 있을지도 잘 가늠이 안된다. 그래서 3D에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해부가 꽤나 쉬워진다. 매년 그런 사람이 한 명씩 꼭 있는데, 동기 중에서도 3D에 특출난 친구 하나가 압도적으로 1등을 기록하며 교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사실 모든 걸 떠나서 육체적으로 힘들다. 포르말린은 발암 물질이기도 하지만, 그런거 다 떠나서 마시면 머리가 어지럽고 사고가 굳는다. 또 카데바에서는 특유의 지방 썩는 냄새와, 장기 냄새 등이 나게 되는데 이게 새로운 부위를 해부할 때마다 심해진다. 그래서 반드시 해부실에 들어갈 때는 해부용 복장(버리는 옷 등)을 갖춰서 들어가야 한다. 피는 이미 다 제거한 상태지만, 지방, 간질액 등이 존재해서 옷에 많이 묻기 때문에, 해부실을 나올 때는 옷이 범벅된 경우가 흔하다. 본과 생활기에도 써두었지만, 그 상태로 씻지도 못하고 앉아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해부 끝나갈 때 즈음 되니까 머리도 많이 빠지고, 코에는 항상 피가 맺혀있었다.
이렇게 등 —> 상지 —> 목 —> 머리 —> 흉부 —> 복부 —> 골반, 샅 —> 하지의 해부가 마무리 되면, 이를 바탕으로 땡시가 출제된다. 땡시는 30초안에 문제를 맞춰야하는 시험으로 악명이 높다. 이에 대한 설명은 추가로 하지 않겠다.
참고로 해부학은 골학(뼈공부)를 완전히 마쳤다는 전제 하에서 시작된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이게 꽤나 중요한 것이, 뼈의 구조물 위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해부를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모형 상에서 빛나는 근육은 승모근(trapezius)이다. 모든 근육은 origin과 insertion이 존재하게 되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origin은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쪽, insertion은 근육이 움직이는 쪽이다. 당연히 예외가 존재한다. 승모근의 origin은 위에서 볼 수 있듯이, ext.occipital protuberance, ligamentum nuchae, spinous process of C1-T12 등이 있다. 이 부위에 붙은 근육은 움직임이 없다는 뜻이다. 승모근의 insertion은 lat. 1/3 of clavicle, medial side of the acromion 등인데, 해당 부착지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골학 공부의 중요성이 나타나는데, spinous process가 척추 뼈의 어느 곳인지, acromion이 어느 뼈의 구조물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공부하면서 머리 속으로 위치를 상상할 수 있다.
해부학에서는 인체의 일반적인 구조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일반적인 구조라 함은, 뼈, 인대, 관절, 근육, 동맥, 정맥, 장기, 신경 등을 일컫는다. 해당 부분이 어느 곳에 위치해있는지, 기능은 무엇인지, 그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주변 구조와의 위치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움직임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배우고 암기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근육파트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상지 중에서도 전완이었는데 살짝 알아보자.
좌측 사진은 손바닥면, 우측 사진은 손등면이다. 이는 지금 모든 근육과 신경을 표시한 상태이고 기타 혈관은 표시하지 않았다. 근육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내부에도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완근’은 이렇게 많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근육은 크게 굽힘 근육(flexor)와 폄 근육(extensor)로 나뉜다. 이 외에도 adductor, abductor, opponens 등의 종류가 존재하고,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경도 중요하다. 어떤 신경이 어떤 근육을 지배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사진 상에 보이는 노란색이 신경들인데, radial nerve가 어디를 지배하는지, ulnar nerve가 어디를 지배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혈관의 경우는 어떤 혈관이 어느 장기나 근육에 영양을 공급해주는지, 어느 곳까지 퍼져있고 어디서 분지되는지(이름이 바뀌는지), 굵기는 어떤지 등을 알아야 한다. 장기는 당연하게도 각 장기의 역할, 구성 요소, 부위별 기능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
글로 하는 공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뼈, 근육, 그에 따른 신경, 장기, 혈관 등에 대해 배운다면, 실습에서는 그것을 구분해야한다. 신경과 혈관은 카데바가 잘 보존되어있을 때는 구분이 쉽지만, 실습이 진행되면서 카데바가 마르면, 혈관과 신경 그리고 힘줄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흔히 탄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나중에 가면, 오로지 주행과 타 근육과의 위치관계를 보고 파악해내야 하는데, 실습에서는 이런 필기의 지식을 적용하는 공부가 늘게 된다.
해부학은 의대에서 배우는 기초 중의 기초 과목이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압도적인 양과, 실습으로 인한 육체적인 피로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본과 생활기(1)에서도 썼지만 1학기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집 앞 안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난 본과 1학년으로 돌아가면 자살할거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하신 말씀 그대로 적은 것이다. 예순은 당연히 넘으셨을 것 같은 백발의 의사 선생님도 본과 1학년을 생각하면 악몽 그 자체였다고 하신다. 해부, 조발신,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 등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었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해부학이 압도적이다. 물론 우리 대학의 이야기라서 타 대학 의대생들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부학은 내가 하는 공부의 의의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 과목이다. 처음 방수포를 벗기고, 카데바를 마주했을 때, 카데바의 피부를 만졌을 때 등 여러 순간들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우리 조 카데바의 성함, 사망원인, 사망 날짜도 모두 기억난다.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부는.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난 절대 기증 못할 거 같아.’ 친구들도 다들 공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내가 했던 것처럼 누군가 나의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해부한다고 생각하면, 사후의 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기증자분들에 대한 압도적인 존경심이 솟구쳤다. 얼굴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그분들이 어떤 생각이셨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내 기증자 분은 2017년도에 돌아가셨다. 해부를 2020년에 했으니 3년정도 보존액 속에서 계셨던 상황이었는데, 학생들의 공부를 위해 숭고한 선택을 해준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학생을 제외하고 이루어져서 너무 아쉽고 죄송스럽다. 이 글을 통해 대신 감사함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