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에는 왜 소화제가 딸려오나
*본 글은 과목을 소개하는 일환으로,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개인적으로 학교 과목 순서에 맞게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해부학, 발생학, 조직학, 신경해부학에 관한 내용은 조금 더 자세하게 쓰고 싶은 점, 그리고 사실상 시간이 나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당장 시험이 끝나는 과목부터 하나씩 소개하려한다. 우선 생화학이다.
의대에서 배우는 생화학은 사실 과목에 대한 소개를 들은 기억은 없지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얘기해보자면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풀어내는 학문’이다. 물론 비슷한 결의 생리학이 있지만, 생리학보다는 조금 더 미시적인 기전에 관심을 가지는 듯 하다. 사실 타 학과에서 배우는 생화학 강의록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의대는 병의 임상증상과 발병기전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포함해서 배우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1학기를 통틀어서 가장 재미있게 배운 과목이었고, 시험 공부를 하는 것에도 크게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은 과목이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내용을 다뤄보자.
생화학의 선행과목은 유기화학, 일반화학 등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괴롭지 않으려면, 적어도 일반화학의 화학 평형에 관한 개념은 잘 잡고 들어가야한다. 나는 일반화학을 배우지 않고, 생화학을 들어갔는데, 초반에 이해하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또한 유기화학적인 기전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애초에, 유기화학의 꽃인 합성 과정이 몸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유기화학을 깊게 이해하고 배운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생화학의 정식 명칭은 ‘몸의 구성 성분’ 이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우리의 몸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핵산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당연하게도, 이 구성은 매순간 변화한다. 단적인 예로, 뼈를 떠올려보자. 우리가 떠올리는 뼈는 근육 속에 단단히 자리잡은 변함없는 플라스틱 구조물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 뼈는 여러 호르몬의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분해되고, 끊임없이 생성되는 동적인 상태에 놓인 구조물이다. 이처럼 생화학에서는 이런 몸의 구조물, 구성성분이 어떻게 생성되고, 분해되는지에 대해서 배운다.
생화학은 인체라는 넓은 틀에서 정말로 많은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인상깊게 배웠던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려 한다.
턱걸이를 무리하게 하다가 근육을 다친 것 같아 병원에 들렀다. 다행히 가벼운 염증이라 소염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간다. 소염제를 준다고 하셨으니 한 알만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한 알이 더 들어있다. 소화제다. 사실 굉장히 뜬금없지 않은가? 근육이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왜 소화제를 주는건가. 고등학교때부터 궁금했지만, 이 과목을 배우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병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염증이 생겼다’는 말은, 말 그대로, 염증 반응이 몸의 어딘가에서 일어났다는 뜻이다. 염증 반응에는 굉장히 많은 림프구, 단핵구, 백혈구 등이 관여하지만, 지금 설명할 것은 조금 더 미시적인 기전이다. 염증 반응에서는 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이 합성된다. 이 물질은 통증, 발열에 관여하게 되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 물질이 작용하면 통증이 나타난다.
우리가 먹는 소염진통제는 이 prostaglandin의 생성을 억제한다. 이 prostaglandin을 생성하는 물질은 cyclooxygenase2 줄여서 cox2 라고 하는 효소이다. 이 효소의 계열에는 cox1, 2의 두 가지 종류가 존재하는데, 우리가 먹는 진통제는 cox2의 활성부위(기질_준비물과 결합하여 prostaglandin을 만드는 부위)에 특정한 작용을 해서 물질 생산을 막게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진통제는 cox2만 저해할 수가 없다. cox2 뿐만 아니라, cox1의 작용도 같이 억제하게 되는데, 여기서 소화제가 필요한 이유가 나온다.
cox1 효소는 위의 점막을 만드는것에 관여한다. 즉 cox1 효소가 억제되면 위의 점막 형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이 효소는 blood clot을 만드는 작용도 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진통제 계통 중 NSAID(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인 아스피린은 이 cox1,2를 동시에 억제한다. 그래서 ‘아스피린을 먹으면 피가 묽어진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즉,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진통제는 통증 물질의 생성을 억제한다.
2. 하지만 통증 물질을 생성하는 효소만 제어할 수가 없다. 동시에 위 점막을 만드는 효소도 억제한다.
3.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화제를 처방한다.
물론 요즘엔 그래서 cox2만을 타겟해서 방해하는 약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또 더 찾아보니 사실 위에서 설명한 논리에 대해 정말 방대한 지식이 존재하는데, 본과1학년 생화학을 갓 배운 학생 입장에서 쓴 내용이라 오류가 있을 수도, 혹은 이것보다 더 맞는 이론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배운 입장에서 배운대로 최대한 설명해보았다. 솔직히 염증약을 자주 처방받는 입장에서 신기해서, 이 신기함을 공유하고자 적어봤다.
생화학은 위의 예시처럼,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용을 분자적 기전을 바탕으로 배우게 된다. 굉장히 흥미롭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학문이다. 내가 느낀 이 과목에 대한 생각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물론 외울건 굉장히 많고, 양도 많다.)
사실 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내용이지만, 누군가 생화학을 공부해야한다면(그게 꼭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추천하고 싶은 팁이 몇가지 있다.
1) 우선 생화학은 기본적으로 화학에 기반을 둔 학문이기 때문에, 다른 여타 과목보다 분자적 기전, 사용되는 효소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하자.
2) 각각의 화학반응은 목적성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 효소가 결정되는데, 이 효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역할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따라서 각각의 반응의 목적을 생각하고 그 목적에 해당하는 역할의 효소를 외우면 쉽다.
3) 몇가지의 질병에 대한 pathogenesis를 배우게 되는데, 정상인과 환자는 한 끗 차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족보에 굉장히 자주 출제되었던 통풍의 경우는, Nucleotide가 분해되면서 나오는 산물인 uric acid(요산)이 과다 생성되어 생기는 병이다. 이 분해 과정을 매개하는 효소가 있을 것이고, 이 병을 치료하는 약은 당연하게도 이 효소를 억제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쉽게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지옥같은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을 동시에 배우면서 그래도 가장 즐거웠던 과목이다. 다음은 면역학 시험이 끝난 뒤에 면역학을 적어보려고 한다. 유급하지 않고 이제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