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될대로 돼라
실기 준비가 한창이던 10월의 어느날. 성대가 갈리는 기분을 느끼며 모의 진료 연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교학처 선생님들과 못 보던 분들 몇명이 들어오더니, 40명이 쓰는 이 공간에 80명이 써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그럴리가 있겠나. "아니요" "...그렇구나" 우르르 왔던 것처럼 우르르 돌아가신 뒤에 우리들은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시작이다.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의사 파업과 의대생 집단 휴학이 있었다.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던 가을, 기나긴 파업과 휴학 끝에 의사 쪽 진영은 산산조각이 났고, 사건은 일단락 되나 싶었다.
그리고 또 의사를 증원하겠다고 한다. 이번엔 두 배로.
역시 그때 경험했던 것처럼 언론은 또 지금 의사를 쓰레기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병원에 앉아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다들 앉아서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대해 분노하고 확 증원해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한다고 얘기한다.
변호사들은 그동안 즐겼으니 이제 다음은 의사 차례라고 얘기하고,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 의사되기 쉬워졌다고 박수를 친다.
사람들은 더이상 진실에 관심이 없다. 수천번 수만번 반박당한 그놈의 'OECD 평균 의사수'로 의사는 부족한데,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우리가 이걸 이악물고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냥 의사가 배아프다. 고작 수능 하나 잘봐서, 평생을 돈 잘벌고 일하는 그들이 배가 아프다. 그들이 보는 유튜브는 수십년간 관련 분야에서 일한 의사와 본인이 가진 지식이 동일하다는 병신같은 생각을 심어준다. 아니지 어떻게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 의사보다 내 병은 더 잘 아는거 같다. 돈만 보는 사명감도 직업윤리도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병신들. 내과가 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생명을 살리는 필수 의료에 포함되는지도 모르는 병신들이 내과처럼 편한과 하지 말라 그런다. 어이가 없다.
3년이 지났는데, 아무도 진짜 의료를 살리는 길에 관심이 없다. 이제 곧 사람이 줄어드는데 의사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는 뭔가? 사람도 점점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지방에 의사가 많아야하는 이유는 뭔가? 불과 몇 년전까지 다른 과들보다 많았던 소아과 의사들이 없어진건 불과 5년 사이에 젊은 의사들이 돈 맛을 봐서 그런걸까? 요즘 의대생들은 다 사교육을 돈으로 처 발라서 들어온 애들이라, 돈 맛에 환장한걸까? 의사를 많이 뽑았다 치자, 병원은 그럼 의사를 더 많이 채용할까? 병원은 돈이 어디서 나는데? 아아 그럼 페이를 낮추고 의사를 더 많이 뽑으면 되는구나! 그럼 그 많은 의사들이 하는 훨씬 더 많아진 의료행위는 돈이 어디서 나오나?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재정이 무한대였나? 아 모르겠다고? 그렇게들 좋다고 자화자찬하는 K-건강보험은 계속 가겠다 그렇지? 우리나라 건보 보장율이 점점 낮아지는건 알고는 있나? 어이가 없다.
어차피 너네 흉부외과 나오고, 외과 나와서 피부과 차릴거라고? 성형외과 할거라고? 당신들은 수 년간 밤을 새고 삶을 갈아넣는 노력 끝에 무언가를 얻어본적 있는가? 당신들 같으면 그 노력 끝에 얻은 걸 쉽게 버리고 0부터 시작하는 삶을 살고 싶겠는가? 안되니까 그러는거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서 얻어냈어도, 그 결과가 찬란하지 못하니까 버리는거다. 흉부외과 의사, 외과의사, 외상외과의사 이름은 멋있다. 실제로 보면, 멋이라는게 정말 흘러 넘친다. 외상센터만 입는 검은 근무복을 입은 교수님들, 간호사선생님들을 보면 정말 멋있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보는 사람도 그러는데 스스로는 얼마나 자부심 있겠는가. 다들 집단으로 정신병에 걸린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결실을 스스로 버리고 싶겠는가.
이젠 하다하다 그런 기사도 봤다. 의대 교수 당 학생 비율이 너무 적어서 거의 개인과외나 마찬가지라더라. 그래 그건 사실이다. 양질의 교육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으니 교수 당 학생 비율이 왜 중요한지를 알지를 못하나 보다.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난 정원을 지금과 같은 수준의 교육 시킬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너무 재밌다.
이 글에 뭐 '역시 증원이 답이다' 같은 반박할 댓글같은거 달지마라. 나도 이렇게 감정적인 글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글을 써봤다 3년 전엔. 모든 기사에 찾아가서 최대한 친절한 글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해봤다. 의미가 없더라. 이 글은 그냥 내 한숨 같은거다.
70대 노인이 강원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진료 대기구역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에 심정지 상태에 빠져, 호명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화두다. 너무 안타까운 사고다. 응급실에 들어서면 중증도 분류를 하게 되는데, 초기 중증도가 낮게 보이지만 심각한 질환이 숨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의 경우 보호자가 있었다면 바로 의식변화를 알아차렸을 것이고, 초기 중증도가 높게 배정이 되었다면 빠른 진료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운이 더 좋았다면, 의식을 잃기 전에 호명되는 이름을 들으시고 반응하셨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안타깝게 돌아가신 고인과 그 가족분들에게 누가 되는 것을 알기에 이 기사를 글에 정말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사고에도, 댓글은 전부 '이래도 증원을 반대하는 사람은 쓰레기다.'로 달리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 의사가 더 많았다면, 대체 무엇이 바뀌는건가? 응급실에 찾아오는 모든 환자한테 동시다발적으로 의사가 한 명씩 붙을 수 있는건가? 이 기사는 대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가. 언론은 대체 무슨 기능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건가.
이 나라는 서로를 헐뜯고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이 났다.
다같이 지옥으로 떨어지자. 그게 당신들, 그리고 당신들을 설득하지 못한 우리의 비참한 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