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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May 08. 2024

이제 다른 인생을 살자 엄마

효도는 언제하지 흑흑

모자 관계라는걸 뭐 대부분 그렇겠지만 한번 밖에 겪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모자 관계는 어떤 형태일까? 최소한 누적 인구수 만큼의 모자 관계가 세상에 있겠지만, 그 형태는 각기 다를 것이다.


유년기의 기억은 휘발되기 쉬워 잘 남아있지 않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마트에서 미아가 된 것 일이다. 그 순간의 감정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엄마는 뭔가 가지러 갔다올테니 누나 손 꼭 잡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주변을 구경하던 찰나에, 위층에서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옆에서 다른 매장을 구경하던 누나를 뒤로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나를 부르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로 내려왔으면 됐던 것을, 하필 상행 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형태라 내려갈 수도 없었다. 아직 지능 발달이 덜 된 유년기라 건너편으로 가서 내려와야한다는 것은 몰랐고, 그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울고 있으니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지금 기억에 20대 중반 정도 되어보였던 그 형(정말 착한 사람이다)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날 목마 태우고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방송을 한 끝에 엄마를 만날 수 있었고 왜 누나랑 안있었냐고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이후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엄마는 전업 투자를 시작하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pc 앞에서 지금도 어떻게 보는지 잘 모르겠는 차트를 띄워놓고 뭔가 하시더라. 아침 6시에 항상 일어나셔서 아빠 아침을 차리시고, 6시 30분에는 나랑 누나를 깨워서 아침을 차려주시고, 학교가 멀었던 나와 누나를 격일로 데려다주시기도 했다. 그때는 학교에 다니느라 엄마가 뭘 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러고도 계속 pc 앞에 앉아서 일하시다가 집안일도 하시고, 하교한 나와 누나를 학원으로 또 데려다주시고, 누군가 집에 오면 가족들 저녁을 챙겨주셨다. 이 와중에 투자로 가정에 보탬이 충분히 될 정도의 수익을 내셨다. 지금 쓰면서 느끼는건데, 대체 무슨 삶인가 이게. 심지어 누나와 나는 4살 차이라, 입시를 거의 7,8년을 견디신 셈이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자취를 시작하게되면서, 반강제로 집안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엄마에게 배우게 됐다. 빨래를 너는법부터 개는법, 설거지 하는법, 화장실 청소하는법, 청소기 밀고 방 닦고, 과일 깎는법 등등 혼자사는데 필요한 것들은 전부 배웠다. 이를 할 줄 알게 되니 본가에 와서 요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집안일을 내가 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어느정도 신임도 확보한 상태다.


그래서 반쯤 엄마를 이해했다. 집안일은 정말 힘든거구나. 주식 투자를 하면서도 집안일을 정말 꼼꼼하게 놓치지 않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겠구나(엄마의 청소력을 물려받은 내 자취방은 세스코 영업사원 왈 지금까지 본 자취방 Top 3에 들어간다고 했다). 여기에 나랑 누나도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었겠구나. 처음엔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몸이 얼마나 힘든지,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로한지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어버이날 이제야 나머지 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 덕에 들어간 공모주의 상장일이었고, 주식은 그냥 이름 예쁜 기업이 파랄때 사서 빨갛게 되면 판다 정도로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단타를 쳐야하는 날이었다. 분명 둘이 9시 1분에 팔기로 약속하고 들어갔는데, 오르면 오르는대로 내리면 내리는대로 팔 수가 없었다. 결국 수익을 내기는 했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도 같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일을 약 20년 가까이 매일 장이 열리는 모든 날 해야했던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었다.

따끈따끈한 오늘 대화. 주식하면 인생 망해가 포인트다.


학창시절, 특히 방학 중에 집에서 점심을 먹을때면 엄마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가 있었다. '너 지금 너가 먹는 파스타가 얼마짜린지 아니?'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다. 파스타가 파스타지...? 싶었는데,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나서야 내 점심을 해주시다가 매매 타이밍을 놓친 것임을 알았다. 또 가끔 하교하고 집에 오면 분명히 화장실이 깨끗한데도 또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신 엄마를 볼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날 매매가 잘 풀리지 않아 받은 스트레스를 청소에 쓰시는 것임을 안다.


분명 엄마가 이렇게 오랜 기간 투자를 해오시면서, 불만인 점도 많았다. 집에서 엄마를 부르거나, 혹은 밖에서도 전화하면 안되는 시간대가 있었고, 간혹 일이 잘 풀리지 않으실 때는 괜히 나랑 누나만 혼나기도 했다. 그땐 그런 엄마가 마냥 미웠다. 왜 저런 직업을 택해서 우리한테도 짜증인건지, 왜 우리는 방학이라도 평일 낮시간에 밖에 같이 나갈 수 없는지 머리로는 이해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어느정도 들고, 엄마가 어떤 경험을 하고 살아왔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된 지금, 대단하다 생각이 드는 것보다 대체 이걸 어떻게 20년을 하셨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주부로서, 학부모로서, 투자자로서, 아내로서 모든 일을 소화하려했고, 결국 그렇게 해낸 엄마가 너무 존경스럽다.


그리고 동시에 안쓰럽다. 분명 내가 어릴때는 모임 같은 것도 많이 나가시고 친구도 만나고 하셨는데, 주식을 시작하면서 방해된다며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다 쳐내셨다. 그리고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온지 어언 7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쉴때 드라마를 본다. 한달에 한번씩 있는 모임이 아니면, 밖에 잘 나가시지도 않는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한강을 걷거나 고궁을 가는걸 좋아하지만 이것도 벌써 몇년째다. 주식이 엄마의 인생을 단조롭게 만들었다. 다행히 결혼한 누나가 본가에서 10분거리에 살면서, 또 매형이 골든 리트리버 같은 성격이라 자주 놀러오면서 조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이제는 더 큰 세상을 주고 싶다.


그래서 집에 가면 항상 이것 해봐라 저것 해봐라, 복싱도 같이 해보자, 헬스 끊자 등 최대한 활동량이 많은 것 위주로 권한다. 근데 이제는 체력적으로 예전같지 않으신가보다. 하루종일 모든걸 해내던 슈퍼맨 엄마는 이제 은퇴하실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무섭다. 엄마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무서운게 아니라, 이렇게 가만히 침전하실까봐 무섭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이 다른 것처럼 이제 부모님이 이것 저것 다양하게 즐기실 수 있는 시기가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빨리 돈도 좀 벌고, 시간도 좀 넉넉해져서 같이 이것저것 하고 싶었는데, 젠장 시간은 너무 많은데 돈이 없다. 뭔가 내 돈으로 여행도 좀 같이 다니고 싶고 그런데, 일을 계속하시니 여행은 상상도 못한다. 다른 의미로 빨리 돈을 벌고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모두 부유해졌으면 좋겠다.


근데 뭐 어쩌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데. 하고 생각하며 집에 가면 재롱이나 떨어야겠다 생각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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