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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Apr 27. 2024

항상 주연으로 살 수는 없다

내 자리를 찾자

오늘 4월 27일 모교 체육관에서 최현미 선수의 WBA 라이트급 골드 타이틀 매치가 있었다. 한번도 프로복싱을 직관해본적이 없어서 들뜬 마음으로 경기를 보러갔고, 결론적으로 최현미 선수는 패배하였으나 여러 흥미로운 경기를 직관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아무래도 이름이 알려진 선수가 최현미 선수밖에 없다보니, 체육관 내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최현미 선수를 응원하러 왔고, 복싱 자체에 대해 관심있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굉장히 적어보였다. 복싱에 관심이 없음에도 선수를 응원하러 그 자리에 함께 했다는 점이 오히려 복싱인으로서 고마웠고, 덕분에 선수들도 큰 함성과 박수 속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 내내, 특히 최현미 선수의 경기 내내 울려퍼진 북소리가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자들은 한복을 다같이 맞춰입고 북을 두드리고, 남자들은 정장에 형광조끼를 맞춰입고 태극기를 손에 들고 큰 북을 치더라. 무려 경기 내내. 북 소리와 그들 수십명이 모여서 내는 함성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장내에 들리지 않았고, 같이 간 친구들과 의사소통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인기가 많아 수만명이 몰리는 미국 경기장에서조차 선수들의 타격음이 생생하게 들린다. 워낙 선수들의 핸드 스피드가 빠르고, 복싱은 1초 안에 수 개의 주먹이 왔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심과 부심 그리고 관객들에게 펀치 타격음은 경기를 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라운드 내내,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최현미를 연발하는 함성과 북소리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신경쓰느라 초반 라운드들은 경기를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경기가 종료되고 채점 결과를 얘기하는 동안에도 북소리와 함께 '이겼다'를 연발하는 통에, 참다 못해 화가난 관객들이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하더라. 10라운드 내내, 복싱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경기를, 판정을 발표하는 순간에 '이겼다'를 연발하는게 선수에게 응원으로 들리기는 할까. 오히려 라운드 내내, 상대와의 공방을 신경쓰는데 북을 치면서 이름을 불러대는게 신경쓰였으면 쓰였지 도움이 됐을까.


어느 국악 동호회에서 초청된 그들은 이 경기가 자신들의 공연무대라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다. 곱게 한복을 맞춰입고, 개인 북을 들고, 링 바로 앞에 모여서 자신들을 봐주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복싱 시합의 주인공은 선수들이다. 본인 흥을 못이겨서, 경기 내용은 보지도 않고 손에 쥐어진 두 막대기로 북을 사정없이 내려치는게 선수들을 들러리 만드는 행위인걸 모르는걸까.


이 경험이 이렇게 불쾌하게 느껴지는건, 단순히 관람에 방해를 받아서만은 아니다. 무의식 중에 주연 자리를 넘보려고하는게 가증스러워서다. 태극기를 든 남자들은 링 주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여자들은 아무 상관 없는 소리를 지르고, 이렇게 직관적인 불쾌함이 느껴지는건 드문 일이지만, 조연에 있어야할 사람이 주인공을 넘보는건 일상생활에도 만연하다.


왜일까. 왜 언제 어디서든 내가 주목받기를 원하고, 시선이 옮겨가는걸 참을 수 없어하는걸까. 친구들 모임에 친구가 여자친구를 소개하겠다고 데려온 일이 있다. 그 날의 주인공은 바로 그 친구와 여자친구 커플이다. 어떻게 만났는지, 친구의 어디가 좋은지, 친구가 잘 해주는지 등 궁금하지 않더라도 이런걸 물어봐주고, 굳이 여자친구는 모르는 우리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꺼내지 않는건 지극히 일반적으로 해야할 사회적 행동이다. 알아서 조연으로 빠져주고, 주연을 챙겨주는건 나쁜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들보다 위치가 낮아서도 아니다. 배려다. 주연이 빛날 수 있게 해주는 배려.


꼭 이렇게 특별한 상황일 필요도 없다. 둘이 만나도 주연과 조연은 나뉜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수없이 바뀐다. 요즘 고민이 있다고 말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을때 주연은 친구다. 나는 그저 옆에서 조연으로서의 역할(적극적인 경청)을 다하면 된다. 여기서 갑자기 주연 자리의 찬탈을 시도하는게 '나도 그런 적 있어~'로 시작되는 문장이다. 내 얘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정신차리면 또 항상 쟤가 주연이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무대를 마치면 내려와서 다음 사람이 올라가고, 또 두 명 모두가 주인공일때는 함께 올라가서 무대를 빛내고, 그런게 즐거운 만남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주연으로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보통 혼자가 된다. 왜인지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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