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이 보여 준 '디테일의 중요성'

가끔은 백본보다 디테일이 중요할지도.

by Guny Lee


고마워요 케데헌!


매일 아침 일어나면 유튜브에서 "Golden"과 "Your Idol"의 조회수를 확인하고, 영어로 "kpop demon hunters"를 검색해 따끈따끈한 새 해외 리액션 반응 영상을 찾아본다.


만화, 애니메이션, K-pop을 모두 사랑하는 나에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은 올해 무더운 여름 넷플릭스와 소니 애니메이션 픽쳐스 덕분에, 아니 정확히는 싸이가 쏘아 올린 작은 스노볼을 보아와 원더걸스, 소녀시대와 빅뱅이 피땀눈물로 굴리고, 블랙핑크와 BTS가 때린 강스파이크가 유효타를 날린 덕분에 서구 문화권에 안착한 K-pop의 역사가 내게 시원함을 안겨준 Hot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휩쓸며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케데헌"의 시놉시스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넷플릭스에 갓 등록된 "케데헌"의 제목과 시놉시스를 본 순간, 나는 온갖 불길한 김칫국을 들이마신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시놉시스: '케이팝 슈퍼스타 루미, 미라, 조이. 매진을 기록하는 대형 스타디움 공연이 없을 때면 이들은 또 다른 활동에 나선다. 바로 비밀 능력을 이용해 팬들을 초자연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거, K-pop에 편승하려는 "클레멘타인", "맨데이트" 아니면 혹시 "디워"?



디테일의 중요성 1. '요약의 함정'


“전화, 문자, 인터넷, 카메라, 음악 재생이 가능한 전자기기.”


감동이 오는가? 적어도 내게는 그저 텍스트로만 다가올 뿐, 눈물샘에 자그마한 경련조차 오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패션업계에서 IT업계로 옮긴 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뱉어내는 문서들을 보며 이따금씩 묘한 이물감을 느낄 때가 있다.


'분명 우리는 멋진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왜 이렇게 건조하게만 느껴질까?'


언젠가부터 내게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행위는,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어떻게 형언할지 고민하며, 만들어낸 글자들이 아름답고 멋진지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게 되었다.


요약하고, 정의하고, 명확히 전달하며, 미사여구를 빼고, 줄이고,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게 하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제품 생산을 용이하게 만드는 텍스트란 이름의 도구를 키보드 자판으로 열심히 두들기고 담금질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런데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보다는 조금 더 가슴 뛰는 형식으로 글을 쓸 순 없을까? 제품이던 콘텐츠던, 결국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그 과정에서 돈도 벌고) 만드는 게 아닌가? 혹시 우리의 목표가 그게 아니었던가?



디테일의 중요성 2. '텍스트의 함정'


AI도 멀티모달이니 뭐니 난리다. 텍스트 인식을 넘어 이미지, 음성, 영상, 심지어 센서값까지...


이쯤에서 "전화, 문자, 인터넷, 카메라, 음악 재생이 가능한 전자기기."를 다시 소환하면, 왜 20대의 나에게 iPhone은 하나의 문화요 종교요 신앙이었을까?


iPhone의 외형적인 디자인 이야기를 차치하고서라도, 2007년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향후 수십 년간 세상을 지배할 iPhone에 디테일을 불어넣었던 요체라고 본다. iPhone을 보면 그러기 싫어도 잡스가 생각나고(10 때는 주드 로도 생각나긴 했지만) 그가 입은 검은 목폴라티와 청바지, 뉴발 992가 생각나고 그 후엔 그의 괴팍한 성질머리를 반영하는 듯한 “Today, Apple is going to reinvent the phone”이 생각나고, 생면부지의 그의 딸 리사가 생각나고 그의 말년 췌장암으로 초췌한 얼굴까지도 생생하게 연상된다. 아마 삼성 언팩과 달라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기사가 아닌 영상으로 본 덕분이 아니었을까?


텍스트로 이루어진 문장만으로는 상상력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상상력이 풍부한 텍스트는 논외다. 가령 반지의 제왕의 경우 영화도 훌륭했지만 원작 도서가 훨씬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는 대개 대부분의 콘텐츠가 하나의 감각을 넘어 여러 감각을 자극할 때 훨씬 효과적이다.


몇 년 전부터 서구권에서 K-pop의 성공 요인을 논할 때, 유튜브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 구성, 즉 노래만이 아니라 화려한 뮤직비디오 세트와 칼군무를 통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고 한다.


"케데헌" 역시, 영화의 기본인 플롯과 메시지를 넘어 화면의 색감과 캐릭터들의 디자인, 동작, 효과음과 OST 모두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많은 서구인들이 이에 연신 "Phenomenal!"을 외치고 있다.



디테일의 중요성 3. '마지막 한끝'


BTS를 너무나 좋아했고, 그들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할 때마다 잠 못 이루곤 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 빌보드 1위를 10번 더 차지해도 "마카레나"처럼 전 미국인이 따라 부르는 노래를 내진 못할 거라는 것을.


왜였을까? BTS 중에 가장 영어를 잘하는 정국조차도 "내가 어셔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적통이다"를 증명하는 듯한 팝 사운드트랙으로 앨범을 구성했지만 정말 미묘하게 외국인 같은 발음이 군데군데 느껴지곤 한다. 흑인과 백인이 짬뽕해 만든 자신들의 팝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보수적인 미국 대중을 설득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Golden"은 성공했다. EJAE, 오드리 누나 등 본토인이 듣기에도 본토인이라 느낄 법한 싱어들을 캐스팅했다. 진우의 노래 파트를 맡은 앤드류 최도 마찬가지. 물론, 이제 가사가 반드시 한국어가 아니더라도 K-pop적이라 불리는 요소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K-pop이란 기존 팝보다도 더, 노래의 장르라 규정짓기 어려운, 하나의 종합 문화의 장르에 가깝다 생각한다.


그 외에도 온갖 기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국적인 디테일'도 중요했다고 본다. 서울을 고스란히 옮긴 풍경이나 저승사자는 탁월한 디테일이었다. 다만 케헤던 외국인 리액션 중 적어도 내가 본 반응 중에서는 그 누구도 국밥에 깍두기라던지 젓가락 밑에 깔린 휴지에 대한 언급은 없어 아쉽다.





7년간의 고통, 막판까지 어려웠다던 케데헌


세상에 "케데헌"같이 감동적인 족적을 남기고 싶다. 그럼에 고민한다. 지금처럼 건조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것이 IT 제품일지라도, 만드는 과정에서도 감동이 있었으면 한다. 상호간 오가는 문서 하나하나에도 감정이 오갔으면 한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타인과 함께 서로 살아 숨 쉼을 느끼며 일하고 싶다.


매기 강 이외 모든 제작진에게 근래 중 가장 많은 감사를 보내면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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