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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Sep 19. 2021

[ 육아 르포르타주 ] 나는 나의 아이가 부럽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 일기 혹은 상념


아무렇게나 써놓은 100개의 일기보다 잘 다듬은 10개의 블로그 글이 값지다(?)라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한 구절을 읽고 뇌리에 남아 또 끄적인다. 아무래도 이렇게 하루하루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재정의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던 찰나이기 때문에 더 마음에 와닿았나 보다. 단순히 기록을 위한 기록으로 써재끼던 글이 아닌 뭔가 정제되고 다듬어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말 업무상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맡으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당시 나 스스로 내렸던 솔루션은 나의 메타인지를 끌어올리자였다. 그러기 위해서 글쓰기를 필수라 생각했다. 다만 매일 출퇴근하며 그리고 동시에 초등학생 저학년의 부모라는 위치는 늘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었고 생각만 하며 시행하지 않은 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 유발했다


2019년 말,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오후 9시에 아이와 함께 잠이 들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그때부터 7시 반까지 내가 고요하게 누릴 수 있는 온전한 3시간을 확보했다. 일어나자마자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읽었고 그동안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빨라 책상 한편에 쌓였던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출퇴근 동안 버스에서 고작 한두 장 읽던 내가 새벽에는 책의 절반을 읽을 정도로 집중도가 늘어났다.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죽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나의 메타인지가 늘어나겠지 싶은 마음도 부풀었다. 



그러던 2020년 2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아주 심한 입병을 앓게 된다. 입술 위아래 내부와 혀 가장자리에 수도 없는 작고 큰 구멍이 생겼고 아주 사소한 게 시작한 입병이었는데 마지막에는 차가운 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씹을 수 없는 중증 통증 유발 인자로 발전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맵거나 조금이라도 뜨거운 것이 입병이 나있는 근처로 닿기만 해도 나는 모든 행위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초밥에 들어있던 와사비를 왕창 먹고 코끝이 찡하다 못해 차오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는 정도로 원초적인 아픔이 지속되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획득한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기력 때문도 아니고 그간 나를 간간히 괴롭게 했던 허리 통증도 아닌 고작 입병 때문에 나는 사람이 앓아누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쉬고 또 자게 해야 했다. 약 4~5개월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던 터에 알림이 없이도 4시 15분부터 눈이 번쩍 띄었지만, 나는 다시 두 눈을 꾹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4시 반에 일어날 때면 오후 8시 반 초저녁부터 나 혼자 잠이 쏟아져 어쩔 줄 몰랐었다. 그런데 7시 반 8시에 일어나다 보니 또 자정이나 혹은 새벽 1시 2시까지 잠이 오지 않는 날도 늘어나게 된다


 나는 나대로 이렇게 집 한편에서 꾸며놓은 내 서재에서 알콩달콩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예준이가 훌쩍 컸다. 예준이와 하루 종일 집에서 있다 보면 인생, 좀 진지하게 살아볼까 싶을 때, 그 진지함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를 너무 많이 선사해 준다. 가만히 앉아 하루 일과를 정리하려는 일기가 아닌 블로그 글을 쓰려면 포동포동한 예준이가 내 옆에서 기웃거리며 오늘 점심 급식 메뉴가 어땠는지 장황하게 나열한다. 


웃어야지 어쩔까? 자기 직전, 어제 낮에 눈이 초롱초롱해서 급식 메뉴를 나열하는 아이가 귀여워 지난 번 컬리에서 봐 두었던 이연복 셰프의 짜장면을 사둬야지 싶어 핸드폰을 켰다. 그 순간 귀신같이 당근마켓 알림이 날아온다. <초밥왕 전편, 상태 좋음> 컬리 앱을 향하던 손가락을 거둬 바로 당근마켓 앱을 켜고 거래를 성사한다. 


초밥왕 애장편 전편 모두 이만원에 득템하게 되는데, 돈을 쓰면서도 번 것 같은 이상한 환각증세에 도취되어 예준이에게 사주려던 짜장면 밀키트는 완전 깜박하고 그자리에서 백종원의 요리왕 전권을 구매해버린다. 



이렇게 일기보다 더 값지다는 정제된 블로그 글을 쓰려고 헀으나 써놓고 보니 멀티태스킹의 폐단과 현대인이 겪고 있는 각종 푸쉬알람으로 인해 집중장해 (혹은 경증 ADHD) 의 단서를 확인하고야 만다.


또한 초밥왕 전권 구매는 어쩌면 예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덜 자란 어미는 아직도 만화책 욕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어쨌든..아직도 만화책 좋아하는 엄마를 둬서 나는 최예준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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