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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우 Aug 27. 2024

제주도 한달살이의 추억

제주 비양도의 어느 언덕

년 전 아이가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우리 가족은 제주 한달살이를 감행했다.


지금이라면 회사에 무리한 요청이겠지만 그땐 무슨 용기인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요청하였고 허락을 받았다. 일부는 휴가를 몰아서 쓰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했다.


아내가 휴직을 했었고 코로나가 지속되고 있어서 재택근무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제 다시 그런 기회가 과연 오긴 힘들지도 모른다.


이따금씩 이 시절이 그립다. 그때 한 달간 빌렸던 숙소는 작지만 우리만 독채로 쓸 수 있었고 작은 마당도 있었다. 저녁 무렵에 그 마당에 앉아 멀리 보이는 바다로 해가 넘어갈 때 널어놓은 빨래가 펄럭이고 아기가 기차 장난감으로 기차놀이를 하고 있으면 그 옆에서 아내는 돗자리를 펴고 책을 보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작은 필카로 담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때 느끼는 행복감은 이런 장면이 지나가는 그 순간이 아니라 한참 지나고서 다시금 그 기억을 꺼내어 보고 웃는 순간들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그런 기억을 차곡차곡 잘 넣어두고 나중에 꺼낼 수 있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리라.


우리가 이 시절을 더욱 잊지 못하게 만든 것은 제주의 날씨였다. 이때가 10월이었다. 한낮의 볕은 꽤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다에 가도 즐겁게 발 담그고 놀 수 있고 산에 가도 좋고 들판에 가도 좋은 날씨.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던 비양도 여행은 더 아련하게 기억된다. 눈을 감으면 그때 걸었던 길과 바람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보았던 노란 풀들이 누워있던 언덕의 외로움도 만져지는 듯하다.


기억을 쫓으면 추억(追憶)이 되고 추억을 그리면 행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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