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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Mar 22. 2021

한국적 스탠드업의 가능성,<블랙코미디 > <b의 농담>


스탠드업 코미디는 외국에서 상당히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코미디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낯설고 이질적인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정치, 종교, 인종, 젠더와 같은 민감한 주제를 일반적인 소재로 활용하는 스탠드업의 장르적인 특성은 가뜩이나 보수적인 한국의 코미디 환경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탓이 컸다. 한국 코미디는 표현의 자유를 바탕에 둔 웃음 코드의 다양화보다는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 웃음에 방향성을 두면서 오히려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스탠드업은 적어도 TV에서는 시도되기 어려운 장르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한국의 스탠드업은 보수적인 미디어 환경에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대중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 자극을 덜어낸 한국적인 무언가를 갖춰야만 하는 과제를 지닌 채로 머물러있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 유병재라는 비(非)제도권 코미디언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다. 기존에 없던(규제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제작환경을 제공할 플랫폼과 일찍이 공채가 아닌 웹을 통해 자유롭고 다양한 코미디 제작을 경험해온 유병재의 만남은 한국의 스탠드업이 지녔던 한계를 벗겨낼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특히 유병재는 SNS와 <SNL KOREA>에서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2,30대와 가장 활발한 소통을 하는 코미디언이었다는 점에서, 스탠드업과 같이 이질적인 장르를 부담 없이 받아들일 2,30대를 타겟으로 하기에 최적이었다. 한국의 스탠드업이 태동할 새로운 코미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첫 번째 스탠드업 <블랙 코미디>는 소소한 일상의 경험 나열이다. 아들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종자로까지 이어지는 어머니의 구수한 욕, 늘 화를 내고 있는 농구감독, 사이가 좋다가도 랩 배틀만 들어가면 서로를 향해 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는 래퍼들의 모습과 같이, 살아가며 한 번쯤은 느끼고 경험했을 것들을 제시하고 관객은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스탠드업의 전형(典型)을 덜어내고, 우리끼리의 보편과 공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편 <B의 농담>은 날카롭다. 드라마 감상에 대한 사과, 그 사과에 대한 사과, 그 사과에 대한 사과의 사과라는 우스운 말장난으로 시작되는 이 공연은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를 호기롭게 건드린다. 무슨 말만 해도 물어뜯기는 셀럽 유병재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바라보는 개인의 투정처럼 들리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갈등에 대한 은근한 풍자다. <B의 농담>은 과한 ’PC주의(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을 수면 위로 끌어내 풍자하는, 호불호가 명확할 수 있는 부분까지 과감하게 건드리면서 스탠드업의 장르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유병재가 <블랙코미디>, <B의 농담> 두 편의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유병재 본인이다. 두 편의 공연에서 유병재는 개인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을 한국 사회의 보편, 특히 2,30대의 보편으로 영리하게 확장시켜나간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본인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보통의 인간으로 상정하면서, 그가 겪고 느낀 것들을 공동의 경험으로 제시한다. 무대 위의 유병재의 경험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고, 비로소 한국적 스탠드업의 가능성이 된다.



하지만 공연자의 가치관을 서슴없이 녹여내,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수위를 높인 <B의 농담>에는 거친 악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은 결국 자극적이고 솔직한 매력을 지닌 스탠드업을 어떻게 ‘한국적’으로 정착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해 한국 코미디가 받아든 무거운 과제라는 점에서, 가시밭길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병재의 스탠드업은 장르 자체에 대한 낯섦과 호기심, 자극적이고 솔직한 코미디에 대한 갈증이 겹쳐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스탠드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한국적 스탠드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 우리를 웃겨줄 새로운 무언가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서 이 콘텐츠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본문은 ott전문 미디어 ott뉴스(http://ottnews.kr/View.aspx?No=1537058)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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