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주의보>는 되고, <헤이나래>는 안되는 이유
‘섹드립의 황후’를 꿈꾸던 개그우먼 박나래의 날개가 꺾였다.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와플’의 웹예능 <헤이나래>에서 선보인 높은 수위의 ‘섹드립’이 문제가 됐다. 남성의 성기를 의도적으로 늘리거나, ‘풋잡(발을 이용하여 성기나 기타 부위를 자극하는 행위)’을 연상케 하는 동작들이 남성을 향한 명백한 성희롱이라는 대중의 질타를 받아,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됐고 박나래는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평소 솔직하고 꾸밈없는 이미지로, 특히 적나라한 성적 코드를 본인의 주무기로 활용해왔던 박나래에게 이번 사건은 개그우먼으로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박나래라는 ‘섹드립’에 특화된 개그우먼 개인의 일탈보다 ‘섹드립’의 허용여부가, 대상이 되는 성별에 따라 불균형하게 결정되어 온 것에 대한 남성들의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다. 남성의 성(性)을 소재 혹은 대상으로 하는 ‘섹드립’에는 관대해왔던 그간의 관행이, 이제는 성적 희롱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남녀갈등의 한 사례로만 바라보기보다는, 타인과 타집단을 향한 무분별한 대상화와 희화화에 대한 경고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성인 박나래가 ‘여성이 아닌’ 남성의 성을 웃음거리로 활용했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헤이나래>와 넷플릭스 스탠딩코미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이하 <농염주의보>)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각각 혐오와 코미디로 갈린다. 똑같이 성적 코드를 활용한 코미디였지만, <헤이나래>가 남성의 그것을 활용했던 반면 <농염주의보>는 여성으로서 본인의 성적 경험과 이야기를 해나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남성의 성 경험과 이야기가 자랑과 무용담이 되는 한편, 여성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헤프고 불편하게 여겨지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박나래라는 존재와 <농염주의보>의 주제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파격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에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삼았다는 점이 유효했다.
<농염주의보>는 여자 박나래의 단순한 섹스 경험담이다. 자신의 성적 경험을 적나라하게, 때로는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위를 높여가는 이 섹스코미디는 <헤이나래>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훨씬 더 자극적이고 솔직하다. 그럼에도 불쾌하고 불편하지 않다. 모든 이야기의 기반은 연사 박나래 본인의 것이다. 그렇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의 희화화도, 오버스러운 액션도 모두 코미디가 된다. “8만 8천원으로 귀로 섹스를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그녀의 호언처럼 낯뜨겁지만 흥미롭게 이어지는 그녀의 섹스담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극적인 코미디에 으레 수반되곤하는 비하와 혐오의 걱정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박나래 본인이 이야기의 소재이자 주제였기 때문이다.
<농염주의보>를 보면 질펀하고 끈적거리는 섹스코드를 불편하지 않게 그 원초적 재미만을 전달하는 박나래의 뛰어난 퍼포먼스가 유독 돋보인다. 이렇게 성적 재미를 엽기적으로 바꿔 부담스럽지 않게 제공하던 박나래의 힘과 자신감이 <헤이나래>에선 오히려 독이 됐다. <헤이나래>가 <농염주의보>의 연장선으로서, 불편하고 억압된 여성의 성을 당당하게 유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로 기획되었다면 어땠을까. 남성의 성을 여성의 입장에서 함부로 가지고 노는 것에서 그치지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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