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야?

보이지 않는 현대 괴물

by 구슬

현대 고딕의 주요 작가로 평가받는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의 소설 『좀비』(Zombie)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Q_P_의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내 이름은 Q_P_ & 31살 하고도, 3개월.
키는 178cm. 몸무게는 67kg.
갈색 눈. 갈색 머리. 보통 체구. 팔과 등에 약한 주근깨. 운전 중 안경이 필요한 양쪽 눈 난시.
눈에 띄는 특징: 없음.

My name is Q_P_ & I am thirty-one years old, three months.
Height five feet ten, weight one hundred forty-seven pounds.
Eyes brown, hair brown. Medium build. Light scattering of freckles on arms, back. Astigmatism in both eyes, corrective lenses required for driving.
Distinguishing features: none. (3)


이어서 Q_P_는 자신이 전형적인 백인의 피부를 가졌고, 아이큐는 107 정도이고, 중간 등수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흔해 빠진 포드 승합차를 몰고 다닌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평범하고 평균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소설의 첫 챕터를 통째로 사용한다. 다시 말해 Q_P_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한 시간 전 내 앞을 스쳐 지나갔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 그저 일반인. 하지만 Q_P_는 실존했던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

[1]를 모티프로 창조된 인물로, 끊임없이 희생자를 스토킹 하고, 납치하고 강간, 살해하는 괴물이다.

전통적인 괴물은 눈에 띈다. 드라큘라는 송곳니가 있고,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몬스터의 피부에는 시체의 살갗이 누덕누덕 기워져 있다. 마주치는 순간 그들이 괴물임을 직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의 바깥에서 내부로 침투해 온 타자로, 우리의 규범과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공격한다. 하지만 Q_P_는 그렇지 않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미 사회의 내부인이며, 우리 옆집에 살 수도 있다. 심지어 지금 우리 집 안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현대 괴물의 진정한 공포는 그렇게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잠재성과,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만연성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현대 괴물의 태동과 출현을 구라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Cure”)가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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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7년 일본에서 개봉했다. 1995년 일본에서는 진도 7.2의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고, 지진을 철저히 대비해 오던 일본에서 조차 6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종자와 부상자를 합치면 5만 명에 육박했다. 대지진 발생 몇 달 후에는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 사건이 발생했다. 옴진리교의 화학 테러사건은 14명의 사망자와 6천 명이 넘는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1990년대는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며 세계 제2 강대국이던 일본의 경제 침체가 심화되던 시기다. 일본인들은 ‘세기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당시 일본 사회에 팽배했던 혐오와 불신, 불안의 감정은 사회의 규범과 정상성의 이면에 스며들어 만연했다. 현대의 괴물이 태동할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목부터 가슴 언저리까지 칼로 큰 X자를 그려 시체를 훼손하는 살인사건이 연속 발생한다. 사건의 잔혹성과는 동떨어지게 범인들은 너무 쉽게 붙잡히고, 지나치게 평범하다. 형사 타카베는 그래서, 이 살인들에 배후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어지는 씬에서 그 ‘배후’인 마미야는 바닷가에 서있다. 마미야는 근처에 앉아있던 초등교사에게 다가가 ‘여기는 어디인지, 너는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를 묻는다. 초등교사는 날이 어두워지자 기억을 모두 잃은 마미야를 일단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불 켜진 거실에 앉아 있던 둘, 마미야는 불이 꺼진 부엌으로 가 쪼그리고 앉아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묻는다. “부인은 뭐 해?” 초등교사는 “제 아내는 위층에서 자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계속해서 “네 얘기가 듣고 싶다”라고 요구하는 마미야. 초등교사가 부엌으로 다가와 불을 킨다. 마미야는 빠져나오며 불을 끈다. 어둠 속에 남겨진 초등교사. 마치 마미야와 초등교사의 위치와 상황이 전복된 것처럼 보인다. 초등교사에게 마미야는 다시 묻는다. “부인은 뭐 해?” 초등교사는 대답이 달라진다.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주부예요.” 그리고 다음날, 초등 교사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다. 아내의 가슴이 큰 X자로 베어져 있었다.

노동자는 매춘부를, 남편은 아내를, 선배 경찰은 후배 경찰을, 여자 의사는 남자 환자를 죽이고 ‘제거’를 의미하듯 큰 X자를 새긴다. 마미야가 최면을 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미야가 살인을 교사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에 정직하고 뚜렷하게, 정신과 의사인 사쿠마의 입을 빌려서 감독은 “최면으로 개인의 윤리관 자체를 바꿀 순 없다”고 못 박는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고 믿는 이는 아무리 최면에 걸려도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는 뜻이다. 마미야의 최면은 대화의 끝에 자기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최면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직면하기 어려운, 거부하고 싶은 ‘날 것의 자신’을 만나게 한다. 그렇게 해서 만나는 진정한 민낯이 살의이자 악이라는 점이 공포스럽다. 마미야는 그렇게 누구나 괴물이 될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운다.

‘진짜 자신’과의 직면이 마미야가 제공하는 ‘치유’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큐어」라는 제목에 참으로 충실한 스토리텔링이다. 영화는 타카베의 아내 후미에가 정신과 면담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 전반에 있어서 각종 병원 씬이 많고, 타카베가 마미야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관객은 일본의 최면치료의 역사까지 함께 거슬러 올라간다. 마미야의 치료라 할 수 있는 ‘면담’의 과정 –너는 누구야?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정말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치유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단지 개개인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마시는 공기가 이미 악으로 가득해서 인간 하나하나의 실체가 악이고, 그래서 살인을 저지를 뿐이다. 현대의 괴물은 (미친) 과학자가 시체 조각을 결합해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악마의 피에서 유래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재생산된다. 그렇기에 현대 괴물은 전통 괴물들과는 달리, 그 개별의 실체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것이 야기하던 공포 역시 사라지지는 않는다.

타카베는 치유되었다. 텅 빈 세탁기를 끊임없이 작동시켜 소음을 만들고, 편의점을 다녀오는 잠깐 사이에도 길을 잃어버리고, 저녁밥이라며 새빨간 날것의 고기 한 덩어리를 내놓는 아내 후미에는 타 카베에게 짐이었다. 음식점에서 돈가스를 손도 대지 않고 돌려보내던 그는 치유된 후 스테이크를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타카베의 치유는 그가 후미에가 죽어있는 환상을 본 순간 시작되었을 것이다. 마미야를 심문하며 어쩔 수 없이 면담을 나눈 그는 갑자기 불길함에 휩싸여 집으로 달려가고 목 매어 죽어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오열한다. 하지만 이는 환상이었고 살아있는 아내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실망한다. 아내가 죽지 않음에 안도하기보단 실망하고 슬퍼하고 분노했음을 깨달은 타카베는 그래서 ‘완전히 치료된 후’를 마미야를 죽이고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치유법의 ‘전도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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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보이지 않는” 괴물을 텍스트로 묘사하기 위해 기존의 글쓰기 규범에서 벗어난 대문자와 이탤릭체의 사용, 삽화 삽입 등의 포스트모던적 형식 실험을 수행한다. 「큐어」는 “보이지 않는” 괴물을 스크린에 옮겨 그것의 공포성을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빛을 사용한다. 화면은 지나치게 환하거나, 너무나 어둡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장면은 분명히 있을 어떤 존재가 보이지 않아 으스스하다. 마미야의, 타카베의, 그리고 그들에게 “치유”되고 있는 심연을 보여주는 듯하다. 환한 장면은 모든 곳이 텅텅 비어 불안감을 조성한다.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마저 보일 만큼 빛이 가득한 화면 역시 무언가 부재하는 듯 보여 으스스하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대상이 보이지 않아 불안해진다.

이 영화를 보고 “너는 누구야?”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정상성의 외피 아래의 “나”와 끝내 마주할 수 있는가?

내가 믿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실은 “치유”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않은가?

“나” 역시 타카베의 뒤를 잇는 ‘전도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런 의심을 싹 틔우는 것이 현대 고딕이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공포다.




[1]

제프리 다머(Jeffery Dahmer)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중 하나다. 총 17명의 남성을 살해했으며, 성폭행과 시체 훼손, 시체 성애, 식인 행위, 인체 실험(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약물 주입)을 자행했다.


Works Cited

Oates, Joyce Carol. Zombie. Harper Collins, 2009.

(한국어 번역본도 있다. 국역본 제목 역시 “좀비”. 공경희가 번역했고, 출판사 포레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