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고딕 : the return of the repressed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악한 마술의 주문이 마을을 덮친 듯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누웠다. 병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을 의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는 어른들에게만 국한한 일이 아니어서 잘 놀던 어린이들이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다가 몇 시간 만에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카슨 60)
그 유명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의 첫 장 “내일을 위한 우화”의 한 단락이다. 이 불길하고 묵시록적인 기록은 “예언”이 되어,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잔혹 동화처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침묵의 봄』은 발표 당시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지금은 상식이 된 환경오염과 인간 건강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힌 첫 르포였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슨 이전까지는 그 누구도 인간이 망친 자연이 “되돌아와”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은 웬만한 괴기소설보다도 공포스러웠다.
“자연 쓰기”의 전통에서 볼 때 자연은 늘 인간이 인식하는 대로 해석되는 존재였다. 낭만주의 시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자연이 신의 섭리와 신성성의 재현이며, 인간에게 일깨움을 준다고 노래했다 [1]. 19세기에 들어서며 점차 자연과 문명사회가 나눠지기 시작했다. 소로우(Henry David Thoreu)는 『월든』(
Walden)에서 오두막 근처를 지나가는 기차의 굉음을 폭력적 침입음 [2]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월든 호수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은 세속적 욕망으로 손상되지 않는 진리의 상징으로서, 탐욕에 눈이 멀어 도덕성을 상실한 인간들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소로우 이후 이어진 20세기의 레이첼 카슨, 21세기의 앨런 와이즈먼(Alan Wiseman)[3]과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의 자연쓰기는 소로우의 믿음이자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 자연은 이제 인간의 인식 바깥에 위치한 존재다. 주체성을 가지고 인간의 해석이나 믿음과 관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을 침묵시켰던 인간 세계로 되돌아온다. 기후위기를 직면한 지금은 에코-고딕의 시대다.
고딕 문학은 18세기에 처음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존 로크, 칸트, 뉴턴, 데이비드 흄, 데카르트와 같이 빅-네임의 합리주의자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이성주의,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시대에 초자연적 현상으로 뒤범벅된 고딕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문학 덕후들의 학문적 노력 끝에, 고딕은 프로이트의 언어를 빌려와 “억압된 것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pressed)으로 정의 내려졌다. 고딕은 이성과 지성 혹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상성”의 이름으로 억압된 것들의 귀환—성적 욕망, 식민지에 가해진 폭력, 여성 및 유색인종들의 분노의 재등장— 즉, 사회가 통제하려 들던, 억압된 질서의 복귀라는 것이다. 문학 덕후들의 학문적 탐구는 “고딕”의 갈래를 세분화하는데 일조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억압을 받은 적이 있는 존재들 뒤에 “하이픈 고딕”(- Gothic)이 붙기 시작했다. 여성 고딕 (Female Gothic), 퀴어 고딕(Queer Gothic), 탈식민 고딕(Postcolonial Gothic), 사이버 고딕(Cyber-Gothic)… 그리고 에코 고딕(Eco-Gothic).
에코 고딕은 단순히 “자연”이 고딕적 정서를 만들어 낸다는 해석을 넘어선다. 뾰족한 성, 구불구불한 지하 감옥, 어둠 속에 삼켜진 회랑이 만들어 내던 공포스러움을 거대하고 깊은 숲이 만들어 낸다는 감상을 뛰어넘어, 자연의 주체성을 인정한다. 지금껏 인간의 폭력에 억압되어 온 자연의 반향(eco-echo)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은 기후위기를 거대사물(hyperobject)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끈적끈적하다. 우리가 벗어나려 해도 우리에게 달라붙는다”(Hyperobjects are viscous; they stick to us even when we try to get away). “달라붙다”의 핵심은 더 이상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통해 그것을 객체(object)로 관찰하고, 인식하고,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의도나 이해 여부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몸과 언어, 기억, 감정, 정치,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자연은 인간이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조건이자 환경으로서 인간의 행위를 제약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자연은 더 이상 수동적 배경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 실질적 효과를 미치는 행위적 주체가 된다. 자연이 인간의 인식 범위를 초월하지만 실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은 그동안 인간의 언어로 재단해 온 자연의 귀환 즉, “에코 고딕”의 서사를 가능하게 했다.
대표적인 에코 고딕으로 사만타 슈웨블린의 『피버 드림』(Fever Dream)이 있다. 이 소설은 자연의 반향을 체험하게 한다. 시골의 지역 병원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여성 아만다(Amanda)와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는 소년 다비드(David)의 다이얼로그로 구성된 이 소설은 꿈, 최면, 환각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피버 드림』에서 『침묵의 봄』 내러티브가 반복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골풍경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이미 오랫동안 사용된 화학 농약 때문에 땅과 물, 산 전체가 오염되어 있다. 산속의 계곡물을 마시던 말이 픽 쓰러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자연을 뛰놀던 어린이들은 모두 유령처럼 허연 얼굴을 한 채 쓰러져 갔고, 그중 한 명이 다비드였다. 다비드의 어머니 카롤라(Carola)는 그를 살리기 위해 동네 “치유사”를 찾아갔고, 치유사는 다비드 몸 안의 독을 치유하기 위해 영혼을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혼을 분리하는 의식 이후, 다비드는 목숨을 건지지만, 예전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동네에 찾아온 아만다와 딸 니나(Nina)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만다는 타고난 모성으로 니나와 자신 사이의 “구조 거리”를 언제나 마음속으로 계산해 왔다. 구조 거리란 딸이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이 구하러 달려갈 수 있는 거리를 뜻한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며 이 구조 거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자연이 그 거리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만다는 니나를 자신의 품 안에 안고 있어도 그녀를 지켜낼 수 없었다. 모턴이 말한 자연의 “점착성”이 이미 다비드, 아만다, 니나 모두에게 달라붙어 감염시키고 있었다. 인간의 “거리” 설정은 자연 속에서 환상에 불과하다. 거대 사물로 존재하는 자연, 기후 위기는 이미 인간의 몸과 생활에 분리 불가능하게 달라붙어 있다. 특히 다비드는 자연에게 오염된 후, 인간의 혼을 빼앗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존재다. 그는 인간의 외피 속에 비인간적 에너지를 내재화한, 다시 말해 자연의 주체성을 인간의 몸으로 현현한 존재다. 소설이 아만다와 다비드의 파편적인 질문과 대답의 반복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자연을 “침묵시켜” 왔다. 인간은 자연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억압해 왔다. 자연이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통로, 매개가 되는 다비드는 따라서 에코-고딕적 인물이다.
레이첼 카슨이 말한 “침묵”은 생명체가 사라진 세계에 대한 경고였다. 환경오염으로 사라진 생명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새들의 노랫소리. 『침묵의 봄』이 일깨웠던 공포는 예언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침묵”은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된다. 인간이 자연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던 시간, 자연이 인간 상징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오만함에 대한 은유이다. 억압받던 자연은 되돌아와 그들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에코 고딕은 그런 장르다. 자연을 우리의 인식 바깥의 독립적이고 주체적 존재로 상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장르. 급박한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도덕적 긴급성과 해이함을 깨닫게 하는 장르. 자연은 단 한순간도 침묵한 적이 없다. 에코 고딕은 “자연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문학적 상상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1]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틴턴 사원”(Lines Composed a Few Miles above Tintern Abbey), P. B. 셸리(P.B. Shelley)의 “몽블랑”(Mont Blanc), 키츠(John Keats)의 “가을에게”(To Autumn) 등이 대표적인 자연을 예찬하는 낭만주의 시대의 시다.
[2] 정확히는 농부의 밭 위를 맴도는 “매의 괴성”(the scream of a hawk)과 같다고 표현한다.
[3] 와이즈만은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 콜버트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썼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인간이 자초한 기후위기 속 멸종해 가는 생명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위기에 눈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다.
Works Cited
슈웨블린, 사만타. 『피버 드림』. 조혜진 옮김, 창비, 2021.
카슨, 레이첼. 『침묵의 봄』.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2024.
Morton, Timohty. Hyperobjects: Philosophy and Ecology After the End of the World. Minnesota UP, 2013.
Thoreau, Henry David. Walden. Oxford UP,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