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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Jan 30. 2021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25가지 이유

그 남자와 그 여자 이야기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이유 이십 다섯 가지를 정리해 말해달라는 네 얘기를 듣고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너를 혼자 두고 캐나다로 넘어온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혹시나, 설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아닐까? 네가 우리의 관계를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은 내게는 속상한 일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그다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너와 함께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목표이고 그걸 위해서는 뭐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었다. 하루를 정리하며 버텨내는 힘이기도 했고 사실 나중에 내가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면 내 일기장을 선물하고 내 힘든 시절의 솔직한 기억을 같이 읽어 내려가는 꿈이 있었다. 지금 그 일기장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한번 우연히 그 일기장에 대해 생각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방황하는 이십 대 초반의 흑역사에 가까워서 그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았다. (어딘가에서 찾게 된다면 불태워 버릴 생각이다)


  네가 한 얘기를 듣고 무작정 이유들을 써 내리기 시작하다 문득 그 일기장이 생각이 났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바람들을 일기장처럼 덤덤하게 풀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체를 좀 딱딱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재 같다고 짜증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S

   네게 나와 결혼을 하고 싶다면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25가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다. 사실, 25가지씩이나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사실 하나, 두 개 정도면 충분했다. 너와 다시 사귀자마자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며 태어나 처음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의 반 이상의 시간 동안 스스로가 비혼 주의라 외치며 살아왔던 내게 막상 결혼이라는 것은 나에게 너무 막막한 것이었고 조금은 두려운 것임에는 분명했다.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와 결혼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는 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집으로 향해 나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말하던 너, 문득 궁금해졌다.
  
 다시 말하지만 25가지는 사실 심술이었다. 대학원 논문보다 더 잘 써서 보여줄 거라는 네 모습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괜히 못살게 굴고 싶었다. 네 메일을 받기 전 난 네가 분명 반 이상은 터무니없는 얘기들로 채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가령 ‘네 성격이 바다같이 넓어 좋아’ 같은. 


 막상 회사 화장실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아 네 글을 끝까지 읽어 내렸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너란 사람에게 반하게 되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네 긴 글을 읽어 내렸다. 그 내용은 한 번씩은 우리가 만나서 나눴던 얘기들이지만 그것이 활자의 모습으로 구현될 때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그 감정을 느끼게 해 준 네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답장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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