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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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너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건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네가 숙제를 내준 날 이미 열몇 개도 넘는 이유를 적어 내려갔다. 대학교 때 했던 과제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는데 사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은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혼자 글을 썼다. 그래도 앞서 말한 일기장을 빼놓고서는 이 정도 길이의 글은 써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물리적인 의미에서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을 빼고는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소재가 모자란 것이 아니니까. 가장 어렵고 공을 들인 과정들은 머릿속에 들어있던 커다란 생각의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풀어헤쳐 정리하고 이렇게 추려내는 것과,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고치는 과정이었다.
이유가 많은 것도 이유고, 그 이유들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릴 수 있는 것도 내가 너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너를 사랑하는 이유만 오십 가지를 따로 적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 내가 예전에 했던 긴 연애를 포함해 서른이 넘은 사람들끼리 만남에서는 결혼이라는 주제가 평범한 주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엇비슷한 얘기들의 가장자리에 가기도 전에 내가 겪게 될 힘든 것들과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곤 했고 그런 이유로 시작하지도 못한 관계를 잘라내 버리곤 했다. 그런 내가 너를 만나고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