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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르찌르 Dec 26. 2018

4. YOLO 하다 GOLO 간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 유독 잘 바뀌는 친구였다. 어느 날에는 하와이 해변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하이디가 나올 법한 알프스 산맥에서 양갈래 머리를 한 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업데이트됐다. 알록달록한 가우디 건축물이 등장하기도, 화려한 조명을 내뿜는 디즈니 성이 프로필을 장식하기도 했다. 작은 기업의 홍보팀에서 근무하는 스물일곱의 그녀는 여행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현재를 즐기는 진정한 욜로족의 모습이었다. 지난해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는 "2018년 몽골 사막에서 은하수를 보고,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관측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올여름의 끝자락, 청첩장을 받기 위한 자리였다. 일하다가 만난 동종업계 사람과 1년간 비밀연애를 하다가 가을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극심한 다이어트 때문인지, 결혼 준비가 힘든 탓인지 밝았던 욜로족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그녀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예랑(예비신랑)이랑 돈 때문에 맨날 싸워요. 둘 다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도 전셋값이 안 나와요. 열심히 일해도 내 몸 누일 곳이 없는 세상이에요. 언니는 꼭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하세요."          
    
응????????????????? 관계가 틀어질까봐 참아왔던 말을 그냥 할 걸 그랬다.  


욜로 하다 골로 간다.



'오늘만 사는' 20대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경제매체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20대가 올해 백화점 명품관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올 들어 11월까지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의 20대 명품 매출 신장률은 최소 27%에서 최대 79%에 달했다. 30~40대의 신장률은 10%대, 50~60대는 한 자릿수에 그친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20대가 자기만족을 위해 명품 소비에 지갑을 활짝 열었다는 것이다. 또 신한카드는 올해 외식, 쇼핑, 문화 등의 분야에서 20대의 인당 소비 증가율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능력이 돼서 아낌없이 지갑을 열겠다는데 이게 무슨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18 한국의 소비자역량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의 재무능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저조한 60세 이상의 고령층보다 재무설계와 관리능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소비자재무역량은 62.5점으로 60세 이상 고령층(63.4점)보다 뒤떨어졌다.



능력이 되지 않는데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소비한다. 그리고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이러한 20대의 소비행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를 연상시킨다. 당시 나라 곳간에는 시중에 풀 자금이 없었고, 기업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조조정에 나섰다. 사람들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니 당연히 소비를 줄었다. 앞서 살펴봤던 경기 침체의 악순환 고리다. 이때 정부가 이 고리를 끊기 위해 택한 방안이 신용카드의 사용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신용카드 발급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람들은 손쉽게 카드를 발급해 소비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덕분에 소비시장은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과 절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손에도 신용카드를 쥐어준 결과였다.       


최근의 상황은 당시와 닮아 있다. 시발비용, 홧김비용, 소확행, 예쁜 쓰레기 등 흔히 사용되는 신조어는 '오늘만 사는' 20대의 소비를 정당화해준다. 이들 신조어는 '화나니까 써도 된다', '스트레스 받았으니 소비해도 된다'는 마음의 위안을 준다.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예쁘니까 일단 사야 한다는 계획 없는 소비도 인정해준다.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를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20대들을 보면 걱정스럽다. 왜 '오늘만 사는' 소비가 위험한 것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예측해보면 특히 지금의 20대에게 더욱 위험하다. 그 이유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자.     


일본 책 <퇴사하겠습니다>의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는 일본 최대 신문사 중 한 곳인 아사히신문의 기자였다. 마흔 살이 됐을 때 사표를 쓰기로 결심했는데, 이때 가장 먼저 한 일은 TV와 냉장고를 없애고 도시락을 싸는 등 소비습관을 바꾸는 것이었다. 상황이 바뀌면 소비습관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퇴사 준비를 하는 마흔 살보다 장기 불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20대에게 더 중요한 사실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처럼 한 번 굳어진 소비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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