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낯선 엄마로서의 삶
내 가슴이 지금처럼 주목받았던 때가 있었던가. 친구랑 목욕탕을 가도 어쩐지 서로의 가슴에 눈길이 닿을까 조심했는데, 이곳 조리원에서는 내 안부보다 가슴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아주 직설적이고 대놓고 -
"엄마, 가슴 어때요?"
아이들을 만나고 3일째 되는 날 부터 한껏 차오르던 가슴에서 초유가 분비되기 시작했다.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가슴 푸쉬업을 500번은 한것마냥 가슴이 단단해지는데, 여기에 열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출산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젖몸살'이 오는 거란다. 그러고보니 아이를 낳고 입원실에 있을 때 가슴이 아파서 간호사 호출을 요청했더니 가슴마사지가 오신 적이 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엄청 능숙하게 내 위에 올라타고 가슴을 주무르신다. 야릇하고 부드러운 마사지 이런건 상상하면 안된다. 너무 아파서 이악물고 견뎠으니. 수건을 옆에 두고 쥐어짜면서 초유를 닦아내신다. 유선을 뚫어야 한다나 뭐라나.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에 호텔의 여유로움을 기대했다. 하지만, 단 한가지의 미션이 나를 내내 옭아맨다. 그놈의 젖, 젖, 젖,,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지만 서너시간 마다 절대 땡땡이치지 못하는 일과가 찾아 온다. 철부지 엄마가 조리원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외출할까 잠시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서 모유가 흐르기 시작해 빨리 돌아가서 상의를 벗고, 젖을 짜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남편은 졸지에 원시인이 된 아내의 변한 모습이 납득이 될까.
모유수유는 아이와 처음으로 함께하는 2인3각 게임 같다. 아이가 제대로 물어야 엄마의 가슴을 비어주워 젖몸살을 예방한다는 것. 아이를 먹이기 위함도 있지만, 엄마가 살기 위해 모유수유를 해야하는 재미난 상황이다.
태어난지 5일된 아가에게 도움받을 일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입을 오물거리지 않을때면 '제발 엄마를 위해 힘내줘'라고 간절한 눈으로 보게 된다. 젖먹던 힘까지 낸다는 관용어는 진짜 작은 힘을 말할 때 쓰는 거라 알고 있었는데, 이 젖먹던 힘이라는게 보통이 아니다. 유축기의 펌핑으로 온 힘을 줘야 나오는 젖이니, 아이는 그 작은 입으로 현대과학보다 더 큰 힘을 본능적으로 내고 있는거다.
모유수유에 성공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유축신세다.
나팔처럼 생긴 유축기를 손에 쥔채 가슴에 밀착시킨다. 반대 손으로 펌프질을 해주면 가슴의 모유가 젖병에 모인다. 모유를 짜내며 멍하니 젖병이 차오르는 걸 보고 있으면 내 가슴에는 실용적인 의미만 남는다. 오늘은 왜 이렇게 적게 나오는거지, 물을 덜마셨나, 미역국을 덜먹었나, 좀 더 펌프질을 해볼까 등.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르고, 모유수유에 도전하고, 유축하는 그 반복적인 일과가 4시간마다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유두 주변이 빨갛게 헐어있다. 아이가 먹어도 안전한 크림을 바르고, 살이 쓸려 상의는 입지도 못한채 원시인의 몰골을 하고 있는 내가 쓸쓸하다. TV에서 보던 모유수유는 흰 셔츠깃을 살짝 벌려 아주 우아하게 진행됐는데, 왜 나의 수유는 젖소가 먼저 연상되는 걸까. 쿨쿨 잠든 남편이 깨지 않게 어두운 조명을 키고 새벽에도 네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유축을 해야하는 게 엄마로서 내 첫 임무였다.
아이를 낳는건 상상과 다른 일임을 이때부터 깨달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