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 투게더>
이과수 폭포가 말없이 떨어지는 아르헨티나. 보영은 나비처럼 사랑을 찾아 떠돈다. 그는 사랑을 잡으려는 아휘에게 구애하고 달아나길 반복한다. 다른 성격의 둘은 여느 연인처럼 사랑하고 다투고 또다시 사랑하지만, 끝내 헤어진다.
이토록 뻔한 멜로 서사를 구원하는 방법을, 왕가위 감독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감독은 백 마디 말보다 강렬한 몸짓으로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대화가 없는 장면에서 인물의 감정은 예기치 않게 폭발한다. 택시에서 보영이 아휘의 어깨에 기댈 때, 녹음기를 든 아휘가 울음을 삼킬 때, 아휘의 이불을 부여잡고 보영이 흐느낄 때, 사랑은 몸으로 드러난다. ‘해피 투게더’는 비극을 품은 극적인 몸짓들로 그린 영화다.
반도네온 거장 피아졸라의 탱고 선율이 영화 전반에 반복된다. 아르헨티나가 배경이기에 선택된 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탱고만큼 그들과 어울리는 춤이 없기에 오히려 아르헨티나에 인물들을 데려다 놓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탱고 춤을 닮았다. 끊어질 듯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움직이게 만드는 탱고는 그들의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낡은 부엌에서 보영과 아휘가 춤을 춘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을 뗀다. 둘은 이마를 맞대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금방이라도 어긋날 듯 아슬아슬한 탱고를 춘다. 조금씩 다가선 몸이 서로를 확인할 즈음, 연인은 모든 걸 잊겠다는 양 부둥켜안는다.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이들은 불안하고 처량하다. 왕가위 감독은 춤추는 두 연인을 숨죽여 엿봄으로써 처절한 사랑을 오롯이 담아낸다.
탱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로 리처드 기어의 ‘쉘 위 댄스’를 꼽을 수도, 알 파치노의 ‘여인의 향기’를 꼽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탱고를 닮은 영화는 ‘해피 투게더’ 뿐이다. 방황에 어울리는 낯선 90년대의 아르헨티나. 그 속을 떠도는 인물들은 탱고처럼 정열적으로 사랑했다. 아프고도 시린, 잊지 못할 춤사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