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
불온한 사상을 가진 적 있습니다. 초등학생 체험학습으로 찾은 박물관에서의 기억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실존 인물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보는 누런 사료들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라면? 영화 <트루먼쇼>처럼 우리의 경험과 실재가 편집되었을지 모른다는 나름 거국적인 음모론이었습니다. 엉뚱한 상상이 일상인 유년이었지만, 400여 년 전 기록을 두고 현시점에서 역사를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한동안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은 약 40년 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오늘의 시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몇 해 전 전 육군 대령 지만원 씨는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 자료에 나온 인물들이 북한군이라 주장하며 이들을 '광수'라고 지칭합니다. 제작진은 지만원 씨의 주장이 허구임을 밝히기 위해, 또 사진에 찍힌 빨간 낙인을 걷어내기 위해 사진 속 인물들을 직접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여러 사진에 걸쳐 등장하는 '김 군'이 있습니다. 그의 정체와 행방을 찾기 위해,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게 됩니다.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지향합니다. '암사자가 무리 지어 사냥합니다'로 시작하는 사실 지향적 내셔널 지오그래픽과는 그 출발점도 도착지도 다릅니다. 영화 <김군>은 역사 다큐멘터리 장르에 온전히 가닿아있습니다. 당시 민주화운동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남아있고 이들이 오늘의 시선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는 진실 단 하나를,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법 하지만 그만큼 절제된 수사 덕분에 진실은 명료하고 담백하게 남습니다. 필요 이상의 신파와 정파적 팬덤에 신경 쓰는 다큐멘터리들에 비해 분명 앞서는 지점입니다.
사회가 아닌 개개인을 조명하는 연출 역시 영화를 돋보이게 만듭니다. 흔하디 흔한 '김 군'을 찾아 나서는 제작진은 평론가와 분석가를 찾지 않습니다. 그리고 찾아가 만나는 갑남을녀는 참상을 결코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미시적이고 사적인 체험으로부터 엮어낸 1980년 5월의 광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누구나의 역사가 되어갑니다. 지만원 씨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추적은 극 진행을 위한 장치이고 하나의 동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한 명 한 명 아픈 목소리를 빌림으로써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니는 가장 강력한 힘을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화 <김군>은 2018년과 2019년 세상에 나왔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으로 남습니다. 내년 5월 중순 즈음 케이블 채널 어딘가에서 모두가 잠든 시간대에 한 번 틀어줄 수도 있겠습니다.
기억은 사람 수만큼 종이조각처럼 찢어지고 그대로 흩뿌려집니다. 오래된 종이조각이 광장 한가운데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가만 두면 날아갈 버릴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이 조각들을 주섬주섬 모아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책임감으로, 혹은 당사자의 상처를 들출 수 있는 용기와 집요함으로 이룬 귀한 성취입니다. 근현대사를 겪어낸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영화 <김군>이 오래도록 회자되기를 바라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