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맥그리거 : 노토리어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에게 달리기란 지난날을 복기하는 시간이고 극기의 경험이었다. 목표는 어제보다 나아지며 결승점을 두 다리로 완주하는 것뿐이다. 바지 한 장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누구나 하는 겸허한 운동이 누군가에게 삶을 가르친다.
달리기 만큼이나 원초적인 스포츠가 있다. 룰도 간단하다. 상대를 때려눕히고 살아남아야 한다! 철창 속 격투기는 맨몸으로 강함을 보여 생존을 증명하는 서사다. 기껏해야 김동현 선수밖에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의 다큐멘터리로 내게도 할 이야기가 생겼다.
젊은 날 배관공으로 일하던 아일랜드 출신 격투기 스타 지망생은 스스로를 기록하는 비디오카메라에 대고 외친다. 난 격투기로 성공할 거야. 더 강해지고 돈도 많이 벌 거라고. 이때까지만 해도 맥그리거의 삶은 한낱 영웅 서사 도입부 클리셰였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뻔하지 않았다. 그는 움직였고 부단히 링 위로 올라갔다. 겁 없이 스스로를 보여주고 증명하는 패기가 원동력이었다. 맥그리거의 시선은 줄곧 위를 향했고 그는 자신보다 강한 인간을 찾아 나섰다. 챔피언들을 도발하는 버릇 때문에 건방지다는 세간의 평이 있을 정도로 맥그리거는 매번 강자를 끌고 링에 올랐다.
링 위에선 달려드는 상대방과 자신을 의심하는 대중의 시선에 맞서 겨루었다. 온 힘을 다해 두 다리로 버텼고 상대방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간 훈련하면서 흘린 피와 땀의 무게로 승부는 판가름 났다. 여전히 젊은 날의 맥그리거는 UFC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파이터의 위대함이다. 승리와 챔피언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는 무패의 파이터가 아니다. 어떤 위대함은 패배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패배했음에도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온 힘을 다하고도 패한 코너 맥그리거는 경기 직후 실의에 빠진다. 분노와 억울함, 자책 등이 그를 휘감는다. 그리고 꼬박 48시간 만에 그는 훈련장에 나타난다. 약속된 훈련을 담담히 마치고는 채 회복되지도 않은 몸을 목발에 기대 훈련장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언제 올지 모를 또 한 판을 준비한다. 이 아일랜드 출신 파이터에게 정상이든 바닥이든 머무를 곳은 없었다. 쉼 없는 도전이 숙명이라는 듯 훈련이 계속된다.
대처하고, 적응하고, 극복하라. 맥그리거가 밝힌 승리를 위한 다짐이다. 짧은 한 줄이지만 그 무게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링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승자 아니면 패배자뿐이다. 실패를 겁내는 우리네는 처음 링에 오르기조차 버겁다. 어쩌면 저 정도로 단련하지 않아도, 누굴 이기지 못해도 생존할 수 있음에 다행을 느낀 관중들이 대리만족처럼 더욱 열광하는 건 아닐까. 작은 경쟁에 헐떡이는 나로선 '패배자' 코너 맥그리거의 훈련 장면은 일종의 위안이다.
그저 다 큰 어른끼리 본능만 두고 치고받는 쌈박질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링 위에 두고두고 찾으러 올 삶이 있다.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