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키티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현석 Aug 28. 2023

3. 출생신고하던 날

키티에게

어제 엄마와 네가 무사히 퇴원했고 우린 다 함께 엄마의 부모님 댁인 광명으로 왔어. 으레 산후조리원을 가는 게 다음 순서인데 네 엄마는 키티와 하루라도 더 붙어서 있고 싶다며 산후조리원 가길 거부했단다. 다들 간다니 나도 권유했는데, 웬만하면 고집부리는 일 없는 엄마가 강경하게 안 간다고 해 아빠도 결국 못 이겼다.


병원에서 나오던 날 널 꼭 안고 있던 할머니는 기억하니?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인데 네가 보고 싶다고 대전에서 달려왔대. 키티, 아빠, 엄마 그리고 친할머니와 차를 타고 광명으로 나서는 길에 룸미러 뒤로 보이는 모습에 기분이 살짝 이상하더라. 아무래도 나의 엄마가 내 딸을 안고 있는 장면이 나로선 처음이었으니까.


병원을 나와 집으로 온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단다. 이제 그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말이야. 그건 장모님도, 산후조리사 선생님도, 엄마도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 느꼈을 거다. 우린 작고 약한 너의 일상을 돌봐줄 의무가 생긴 거고, 그건 달리 말하면 우리 일상에서 그만큼을 내주어야 할 의무가 생겼다는 거다. 아쉬워할 것도 감상에 빠질 것도 없지. 정확히 말하면 그럴 겨를이 없겠더라고.


어젯밤 아빠는 집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집에 돌아갔고 엄마와 외할머니가 밤새 너를 돌봐주었어. 잠을 잔다고 방에 들어가 별일 없이 하루를 정리하고 눈을 감는 일상이 당분간은 사라졌다는 사실을, 난 멀리서 혼자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아빠가 전화를 받았을 때 네 엄마는 깔깔 웃고 있었지만 겪어보지 못한 피곤함을 숨길 순 없었다.


아빠는 아침에 홀로 주민센터를 찾아가 네 출생신고를 마치고 왔다. 번호표를 뽑고, 신분증을 내고, 몇의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은 걱정될 만큼 빨리 끝났어. 이름을 잘못 써내 평생 후회하면 어쩌지, 별 시답잖은 걱정도 했단다. 친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적어 제출하고, 표에서 해당 한자를 찾고 엄마와 아빠의 본적이 적힌 문서를 베끼고 뒤돌아서니 키티의 주민등록번호가 생겼다. 비로소 키티가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는 뜻이지.


이어서 건너편 창구로 찾아가 기쁜 마음으로 출산 지원금과 보조금 바우처를 신청했어. 창구 직원 분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애국자라는 말을 덧붙여주셨다. 요즘 같은 세상엔 하나만 낳아도 애국자라고 그러더라. 아빠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라에서 이것저것 지원이 있어 다행이야. 아이를 키우는 것의 어려움이 꼭 금전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혜택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도 좋겠지 싶더라.


돌아와 엄마랑 앉아서 계산해 보니 생후 0개월, 네 연봉이 약 천만 원이다. 대견하다 키티야. 잘 아껴서 분유도 사주고 기저귀도 갈아줘야겠다. 옛날 어른들이 아기는 다 제 밥숟가락 들고 태어난다던데 밥숟가락을 국가 보조금에 벌써 꽂았다는 게 기특하구나.


2023. 08. 08




매거진의 이전글 2. 뜻밖의 호캉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