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with M - 2
얼굴을 더듬었다.
평소보다 곧게 뻗은 수염을
만지고 나서야 아침이 밝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M은 장기간의 이동과
부족한 휴식으로 인해 끙끙 앓고 있었다.
따뜻한 음료라도 사 오고 싶어
눈곱을 벗 삼아 밖을 나섰다.
평소 5잔의 싸구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나는
카페인 부족으로 인해 손과 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분명 M을 보필하고자 밖으로 나왔지만
발걸음은 자연스레 맥도날드의 맥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것은
햄버거집에서 깍두기를
찾는 것과 맥락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업원에게 다가가
따뜻한 블랙커피 한잔과
위스키볼 얼음 한 컵을 요청했다.
팔라완 해변가의 마초적인 바텐더로 빙의하여
적당한 비율로 잘 섞은 뒤
갈망을 외치는 목구멍으로 전부 밀어 넣었다.
카페인에 속아 본질을 잊어버린 채
빈손으로 숙소로 돌아가버렸다.
다행히 M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설레는 표정과 함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센느강 근처 무계획으로 들어간 어느 평범한 피자집
구린내 나는 치즈들이 듬뿍 올려져 있는 꽈뜨로 피자,
나한테는 그저 장식품인 로메인&바질 샐러드
롱고바디 토마토홀을 통째로 부은듯한 비주얼의
파스타를 먹었다.
비는 안 왔지만,
하늘은 고독해 보일 정도로 무채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도 유채색 에너지를 뿜어내는 M 덕분에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M이 한국에서부터 가고 싶어 했던
루브르 광장 속 어느 카페,
유일하게 미리 한국에서 예약하고 간 곳이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시큼한 산딸기 타르트와 달짝지근한
라떼와 캐모마일을 마셨다.
이쁘게 목에 스카프까지 두른 M은
드디어 자기가 상상했던 파리의 모습이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고
촬영 기술이 좋지 않았던 나는
표정이라도 비장하게 지으며
300장의 독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298장은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해가 저물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저녁을 먹기 전 가장 매끈한 에펠탑의 모습을
눈으로 담을 수 있다고 알려진
비밀의 공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에게 말 붙이기 재미가 들린 M은
어느 한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아저씨에게
아기자기한 발음으로 말을 걸었다.
’봉수아! 디스 버스 고잉 히어?
디스 스테이션 라이트?
메르시보꾸!’
다행히 그 아저씨는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으며
친절을 맛본 M은 영어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을 걸어서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아름다운 파리의 골목들과 길을 거닐었다.
양화대교를 연상시키는 다리와
귀가하는 파리지앵들을 뒤로 한채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장소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의 모습은
마치 가장 자신 있는 몸의 특정 부위를 당당하게
뽐내는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시작된 사진과의 전쟁,
그리고 다시 시작된 M의 소리 없는 하우성
포기하고 저녁 먹으려 가던 찰나에
한 무리를 발견했고
별 기대 없이 그냥 사진이나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유로피안들의 사진 실력은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특유의 억지스러운 웃음과 함께
마지막 셔터음만을 기다렸다.
2번의 찰칵 소리,
적어도 5장 정도는 찍어줄 거라 예상했건만..
M과 궁시렁궁시렁 촬영한 핸드폰을 받고
위선적인 감사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아무 기대 없이
그 2장의 사진을 확인한 순간
M과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곧바로 변경되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Take away 가져가다 ‘라는
구글번역기 같은 간판이 적힌 곳으로 들어가
치킨밥과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감했다.
머물던 숙소의 비좁은 프론트를 24시간 지켜주던
넬슨 만델라의 모습과 흡사했던 할아버지와
항상 유쾌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던
말괄량이 삐삐 같던 여자직원은
짧은 시간이지만 항상 시작과 끝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비좁은 포장도로, 적당한 소음 그리고
즐비한 레스토랑들 사이에 초라하게 서있던
아주 작고 아날로그적인 호텔이었지만,
순수하고 오래된 흑백영화 같은
묘한 인상을 나에게 남겨 주었다.
물론 M도 그렇게 느끼길 바라며,
내일을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