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돌 Aug 14. 2024

20년전 동해 바다, 아름다웠다.

그 때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련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흘러 내가 생을 다하는 순간이 오면 난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아마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까?


난 가끔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달프고 바쁜 회사생활, 이런저런 집사람의 잔소리. 여기저기 자의 반 타의 반 관계의 관성에 이끌려 참석해야 하는 저녁자리, 술자리.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일상의 오늘이 가장 빛나는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하고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로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면 그 즐거움과 행복이 얼마나 갈까. 바쁜 일상 속에서 흔치 않은 비일상이 탐나고 반짝거리는 것이지, 비일상이 일상이 되면 그 감동과 즐거움이 지속될까.




이십 년도 더 된 여름휴가철이었다. 아마 2000년 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덜 알려진 조그만 동해바다 마을.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 둘이서 마트에서 산 물안경과 입으로 숨 쉬는 게 연결된 스킨스쿠버를 끼고 열심히 동해 바다의 모래바닥을 뒤져서 조개를 잡았다. 정말 하루 종일 잡았다.


해변에서 한 20미터 떨어진 곳에 조그만 돌섬이 있었다. 그 돌섬에 둘이 튜브를 끼고 헤엄쳐서 올라갔다. 그 돌섬엔 조그만 돌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잡으려고 하면 쏜살같이 돌 틈으로 도망가 버렸다. 겨우 고생고생해서 몇 마리 잡았다.


그땐 모은 재산도 없었고 전세로 살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지위도 과장이었지 싶다. 하지만 내 생애 가장 찬란한 때, 빛나는 보석 같은 때를 떠올리면 항상 조개를 양손에 들고 태양처럼 눈부시게 웃던 딸아이가 떠오른다. 백사장과 푸른 바다, 돌섬을 배경으로.


강렬한 여름 햇살. 가슴께에 찰랑대던 바닷물. 바닷가에 서서 우리를 향해 손 흔들던 아내. 개구리가 물속에 들어갈 때처럼 자맥질을 하며 물속에서 거꾸로 서서 조개 잡던 개구쟁이 딸아이.


그땐 그냥 재미는 있지만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루종일 조개와 돌게와 씨름하느라 피곤하고 태양에 피부는 벌겋게 익어 갔다. 빨리 시원한 맥주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30대 가장. 실무일이 제일 많이 떨어지던 과장이었고 세입자였고 초등생의 학부모였고 결혼생활에 서툰 남편이었다. 안팎으로 피곤하던 시절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장면은 이십 년이 흐른 지금 내 기억 속에선 가장 짱짱하게 행복했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 좋은 펜션, 콘도, 호텔로 여행도 다니고 휴가도 다녀왔다.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 하지만 언제나 내 생애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걸 떠올리면 항상 동해, 조그만 어촌의 그 바닷가였다.


그래서 생각한다. 조만간 회사도 퇴직하고 딸아이도 분가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갖춰서 집사람과 은퇴생활을 하다가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린다면 뭐가 떠오를까?


그게 오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어진 역할과 해야 하는 과제. 직장동료들과의 티격태격. 고객과 밀고 당기는 협의와 협상. 귀찮은 보고서 작성과 승인, 결재. 그런 것들이 그리울 수도 있을까?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게 되는 진실도 있는 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