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싸우지 마라.
직장생활 30년 이상을 해오면서 다양한(?) 일을 겪었지만 회사를 망가뜨리는 건 아무래도 사내정치와 파벌이 제일 파괴력이 큰 것 같다.
사내정치와 파벌은 때론 공공연하게 때론 은밀하게 진행된다. 외국계기업, 국내대기업 모두 겪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유달리 우리만 사내정치가 맹위를 떨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패거리문화의 잔재인지 아니면 이조 오백 년 붕당정치라는 유전적 요인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우린 편 만들기도 잘하고 패싸움에도 능한 것 같다.
최근 전무까지 승진한 후배가 와서 요즘 회사에서 겪고 있는 사내정치와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2~3년 전에 새롭게 외부에서 영입해 온 대표와 기존 임원 간의 입장차이로 이해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게 점점 더 심해져서 그 갈등이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새로 온 대표는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해서 회사를 바꿔보려고 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기존 멤버들은 회사 상황이나 방향과 맞지 않는 조치들에 대해서 사보타주를 하거나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 일정기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의 골이 깊게 파였고 급기야 대표는 기존 임원들을 회사에서 내보내고 본인이 과거에 알던 사람들을 임원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매출은 줄고 고객은 떠나갔다. 회사는 침체의 늪에 빠지고 직원들의 사기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대부분의 직원은 일단은 숨을 죽이고 납작 엎드려서 눈치를 보면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전무라는 직급을 가진 이 후배는 기존 직원의 리더 격으로 어쩔 수 없이 대표이사와 각을 세우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파벌을 왜 만들까? 조직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다. 대개 실력이 없으면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도 연대를 하고 파벌을 만들곤 한다. 왜냐하면 그게 일을 쉽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끼리끼리 뭉치는 구심력을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파벌이나 끼리끼리의 문화가 심해지면 조직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특히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대로 판세나 상황을 읽지 못하면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각자의 파벌에 속한 직원들은 억울함, 분개, 분노를 내 보이며 자기 우두머리를 교묘하게 아래에서 조종한다. 같은 편이면서 사실은 우두머리를 총알받이로 내 모는 것이다. 그런 짓은 주로 경험이 많은 고참들이 잘한다. 아군인 척하고 같은 편인 척 하지만 사실은 우두머리를 소모품으로 활용하는 간신배일 뿐이다. 우두머리 역을 하는 사람은 간신배들의 사탕발림과 충언으로 포장된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고선 앞에 나서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가오가 있기 때문이다.
밑에 직원들은 위의 임원과 대표가 치고받고 싸우게 만들고 난 다음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그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에 불똥이 자신들에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치고받고 싸우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 패거리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리더로부터 같은 편이라는 애정을 받는 건, 보너스다.
리더가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 내편인 척하면서 리더를 교묘하게 조종해서 타 부서나 대표이사와 싸움 붙이려는 직원이다. 대부분 20~30년 직장생활을 한 능수능란한 고참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리더가 되지 못한 열등감을 가진 경우는 이런 교묘한 이간질이 더 악랄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리더의 어디를 자극하고 어떻게 다뤄야 리더가 어쩔 수 없이 앞장서서 싸울 수밖에 없는지, 그 방법도 훤히 꽤고 있다.
두 사람 이상 사람이 모이면 정치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의 사내정치는 회사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어느 선을 넘어가면 회사에 해를 끼치기 시작한다. 회사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더라도 상대방 또는 상대파벌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일을 사보타주하거나 망가뜨려 버린다. 극단적으로 회사가 부진하고 망하더라도 우리 파벌이 잘되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심뽀가 만연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회사는 바닥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만연된 사내 정치 또는 파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리더의 결단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리더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제일 좋은 방법은 양쪽 파벌 모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지는 게, 최선이다.
자신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어느 한쪽 파벌의 우두머리라면?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잘못하면 제일 바보 같은 꼭뚝각시 역할을 해서 커리어를 망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