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만은 오천만 개의 세상을 만든다

인식의 한계라는 필연성

by 조은돌

인터넷, 모바일, 미디어, SNS.

현대사회는 빛의 속도로 정보를 실어 나른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이고 더 큰 문제는 우린 각자의 나름의 필터를 통해 정보를 취사 선택하고 자신만의 인식체계로 걸러서 정보를 받아들인다.


같은 뉴스를 보더라도 좌파와 우파의 해석이 다르고 젊은이와 노인의 해석이 다르다. 여자와 남자의 해석도 상이하다.


과거의 기록으로 더욱 맞춤서비스로 뉴스를 선별해서 실어 나르는 알고리즘은 우리를 점점 더 커다란 알 속에 갇힌 하나의 고립된 계란 노른자 같은 신세로 만들어 간다.


오천만 명이 오천만 개의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알과 알이 부딪쳐 공감이라는 접점을 만들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공감과 이해는 부분적이고 순간적일 뿐이다.


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선지자나 깨달음을 궁구 한 선인들은 어쩌면 이 알을 깨고 나오는 길을 탐구한 영적 지도자인지도 모른다.


알을 깨고 나와서 보니 이 모든 게, 사실은 착각이고 허상이고 집착이라고 부처님은 깨달으셨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걸 깨달으셨다.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가 집착하는 것, 욕망하는 것이 사실은 허망한 신기루와 같다는 것. 잠깐의 인연으로 여러 가지가 뭉쳐서 그런 게 만들어졌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그 또한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다는 걸.


오천만 명이 오천만 개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오늘도 모두 저마다 들어앉은 알 속에서 나름의 뭔가를 욕망하며 떠들어 댄다.


스스로의 인식체계를 벗어나 초월적 세계로 들어갈 필요까지도 없다. 한 꺼풀만 벗겨내고 쳐다보면 우린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무의미한 우주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


다만 현대사회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재산, 출세, 자존심과 에고로 채우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인정받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꿈을 꾸는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창과 칼을 줘야 하나, 총을 줘야 하나? 쫓기는 사람은 허겁지겁 도망치면서 이런저런 살 궁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방법은 하나다. 흔들어 깨우면 된다.


탁!


알을 깨고 나오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그 세상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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