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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송정 Apr 12. 2023

전기밥솥에 40분 땡, 집에서 만드는 초간단 약밥 요리

대추 좋아한다는 엄마 말 듣고, 안 만들 수 없었습니다

"아, 그렇나? 그렇게 쉽나? 근데 한 번 들어서는 잘 모르겠네."


"(뭐라고 말하는 상대방 목소리)"


"그래? 그러면 한 번 보내봐라, 나도 한 번 만들어봐야겠네. 옛날에는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 잊어버려서."



밤늦은 시간, 평소라면 엄마가 잠자리에 들어 조용할 시간인데 말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니 미국 사는 큰언니와 통화하는 소리였다. 다음날 물으니까 언니가 초간단 약밥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고 했다. 만드는 방법은 무척 쉬웠다. 찹쌀을 불리고 각종 재료를 전기밥솥에 넣은 다음 취사 버튼만 누르면 완성되는 약밥이었다.



자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더니...



그렇게 만든 첫 번째 약밥.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설탕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반으로 줄였다. 달콤짭조름한 맛이 좋은, 약밥이었다. "동영상에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밥이 질지도 않고 간도 딱 좋네. 앞으로도 이렇게 만들어서 먹으면 되겠다, 엄마"라고 말하며 평소 약밥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손이 가는 맛이었다.


             

▲ 처음 만든 약밥 간장과 설탕이 어우러져 윤기 나는 약밥. 모양 잡을 필요 없다는 엄마 말에 뒤집어 식히는 중


엄마와 함께 사는 요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좀 더 알아가게 된다. 떡을 참 좋아하는 엄마는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요가나 하모니카를 배우러 다니셨는데, 그때도 잠깐의 허기는 떡이나 약밥으로 채우곤 하셨단다. 



한 번씩 내가 엄마 배를 쓰다듬으며 "우리 떡순이 할매" 하고 부르면 엄마는 배를 내밀며 웃는다. 나이가 들수록 단백질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데, 탄수화물이 많은 떡 종류를 좋아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님 연세가 여든이 넘으면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그냥 하게 해 드리는 게 효도'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하려는 편이다. 그래도 단백질은 지금보다 더 드셔야 할 텐데, 우리 엄마도 그렇지만 옛날 어른들은 떡이나 약밥을 참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가 "나는 약밥도 좋은데 그 안에 들어가는 대추도 참 좋아한다" 하시며 갑자기 대추 사랑을 고백하셨다. "엄마가 대추를 좋아한다고? 나는 왜 처음 듣지? 근데 대추가 맛있어? 난 별론데. 그러고 보니 우린 입맛 참 다르네, 달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엄마가 시장을 다녀오시면 '저건 왜 샀어?'라고 묻게 되는 것들이 종종 있는데, 배를 보이며 누워있는 꽃게도 그랬고 딱 한군데서만 파는 유과도 그랬다. 엄마는 그럴 때 '저번에 니가 잘 먹길래'라고 하시는데 나는 엄마가 대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으니....



얼마 후 약밥을 또 만드는데 이번에도 엄마한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떡을 나도 좋아했으면 떡도 집에서 만들었을 텐데. 빵과 과자는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서, 떡을 만들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만들 준비를 하는데 엄마는 약밥이 얼른 먹고 싶다며 웃는다. 지난번에 만든 게 아직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버얼~써 다 먹었지. 고구마 케이크 먹고 나면 대추 불려 놓을까 했는데 또 한다니까 좋네" 하시며.


             


▲ 각종 재료 엄마가 좋아하는 대추색이 곱다. 밤은 삶아서 냉동시켜 놓은 것. 생밤 보관이 까다로워 삶아뒀는데 만들고 나면 지저분해지니 생밤을 추천한다.




▲ 두 번째 만든 약밥 네모난 틀에서 모양을 잡아주는 중이다.



엄마 좋아하는 약밥, 많이 드셔요



약밥을 만들면 엄마는 간식이 아닌 밥으로 드실 때가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요즘 저녁에 단백질만 먹는 딸 때문에 음식 냄새 풍기기가 그렇단다. " 저녁은 약밥 먹고 그다음에 나도 그거(단백질) 먹을란다." 하시며 내가 먹는 콩가루를 가리키신다.

             

▲ 엄마 약밥 많이 드셔요.


'엄마, 약밥이 원래 까마귀밥이었다네. 신라 때 까마귀가 임금에게 역모를 알려준 일이 있었는데 임금이 고맙다고 밥을 까맣게 만들어서 줬대. 근데 엄마는 까마귀도 아닌데 왜 밥으로 먹어? 그냥 밥을 조금 먹고 약밥도 먹지?'라고,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엄마가 싫어하는 가르치는 말투가 또 나올 뻔해서 급히 입을 막았다. 엄마의 대추 사랑도 인제야 알았으면서. 



며칠 후면 미국 사는 큰 언니가 한국에 온다. 만드는 방법을 보내 준 장본인이니 두 사람이 또 만들어 먹을 것 같다. 오래간만에 보는 모녀, 신나서 만들고 맛있게 먹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큰딸 봐서 기분 좋을 우리 엄마, 언니랑 약밥 맛있게 드셔요.'



엄마가 좋아하는 초간단 약밥 만들기



재료 : 찹쌀 3컵, 대추, 밤, 호두, 은행, 잣 등 각종 견과류(정월 대보름에 사둔 견과류를 쓰면 좋다), 간장 2숟가락(밥숟가락), 참기름 2숟가락, 계핏가루 1 차술, 비정제 갈색 설탕 1/2컵(원래는 1컵을 넣는데 우리 집은 반으로 줄였다), 따뜻한 물 2컵 1/4



1. 찹쌀은 4~5시간 불린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완전히 뺀다. 


2. 마른 대추는 물에 불려 돌려 깎아 씨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3. 생밤은 깎고 4등분 낸다. (우리 집은 삶은 밤을 썼는데 부스러지니 생밤을 추천)


4. 견과류는 원하는 것으로(대보름에 남은 처치 곤란 견과류가 있으면 넣자) 하고 대추, 밤과 비슷한 크기로 준비해 둔다. 


5. 전기밥솥에 따뜻한 물을 넣고 설탕(색을 내기 위해 흑설탕을 쓰는데 우리 집은 비정제 갈색 설탕을 썼다)을 녹인다. (녹지 않은 설탕이 바닥에 있으면 얼룩덜룩해서 색이 안 이쁘고 눌어붙기 때문에 완전히 녹여준다)


6. 밥솥에 찹쌀을 넣고 설탕물과 잘 섞은 다음 견과류, 간장, 참기름, 계핏가루 등 나머지 재료들을 넣고 한 번 더 저어준다.


7. 전기밥솥에 일반 밥 짓는 취사 버튼을 누르면 (밥솥마다 다르겠지만 약 40분 정도 걸린다)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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