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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Aug 02. 2022

입맛은 변한다 (2)

싫어했던 음식을 통해 삶을 배우다.


3. Gazpacho (가스파쵸)


스페인에서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인 '가스파쵸'는 토마토가 주재료인 짭짜름하면서도 상큼한, 차가운 수프이다. 한국 음식이랑 비교하면 냉국이 떠오른다. 가스파쵸는 주로 메인 디쉬가 나오기 전에 먹는 primer plato (프리메르 플라토)에 속하는데, 만들기도 아주 간단해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이 요리가 싫었다. 



예전부터 우리 가족은 토마토를 주로 과일처럼 먹곤 했다. 모든 음식을 다 먹은 후, 디저트 겸으로. 엄마는 예쁘게 자른 토마토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려 주시거나 믹서기에 갈아 달콤한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토마토는 과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토마토가 채소일 수도 있다니. 스페인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되었다. 


 토마토는 채소와 과일의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즉, 수박과 오이처럼 일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일년생 식물(채소)이 맞다. 하지만 덩굴식물 열매로, 안에 씨가 있는 과일의 특성도 갖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토마토는 열매채소, 즉 과채류다.



집에선 당연히 토마토가 과일이었기에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사람 대부분이 토마토를 채소라 분류한다. 나는 한순간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친구 중 유일하게 다른 주장을 갖고 있었고, 유일하게 토마토를 후식처럼 먹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에 끼고 싶었던 나는 그날도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는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준 엄마가 밉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즐기는 '가스파쵸'를 싫어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내 입맛에 익숙한 달콤한 토마토 후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믿기지 않겠지만 스페인에서 25년을 살아오면서 이 요리를 단 한 번도 맛본 적이 없었다. 올해 여름까지. 우연히 남편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직접 만든 가스파쵸를 우리에게 대접했다. 어쩔 수 없이 한입 먹어봤는데, 그 맛에 깜짝 놀랐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맛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더운 여름에 몸을 식히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그 순간,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미리 마음을 닫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과거의 상처 또는 선입견에 갇혀 있었다는 걸. 비록 이 이야기에선 그동안 내가 잃고 있었던 게 새로운 음식과 맛이었지만, 더 중요하거나 더 큰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을 열어보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다른 주장을 갖거나, 다른 외모 또는 문화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리고 그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4. 계피


깊은 계피 향이 강하게 코를 찌른다. 익숙한 맛이 아닌 달달하면서 매운맛이 난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계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나같이 그 특유의 향과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스페인에서는 계피로 향을 내는 음식들이 참 다양하다. 커피에 계피가루를 타 먹는 사람도 있고, 계피 향이 나는 빵 종류도 매우 많다. 아쉽지만 이 모든 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나에겐 그림의 떡과 같았다.



내가 계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바로 아기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하루 3끼 중, 아침은 유럽식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오트밀과 과일 또는 야채를 섞어 만든다. 아직 한 살이 되지 않은 아기를 위해 요리의 기본양념이 설탕, 소금, 후추, 간장을 넣지 않고 있다 보니 맛이 아주 심심하다. 아기가 잘 먹을 때도 있지만 거부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혹시 맛이 없어서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이유식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찾아보았다. 그리고 종종 계피가루를 사용하는 유럽 엄마들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 처음으로 슈퍼에 가서 계피가루를 구매하고 처음으로 켸피가루를 음식에 넣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맛이 없던 이유식에 맛이 생겼다. 색이 없던 요리에 색을 입혀준 듯 계피의 특유 향이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맛이 나는 이유식을 아이에게 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분까지 좋아졌다. 그렇게 계피와 친해지게 되었다. 


어릴 적 나는 가족들이 남긴 음식 또는 싫어하는 반찬을 드시는 엄마를 보며 참 특이한 입맛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때로는 싫어하는 음식을 요리해야 하고, 때로는 싫어하는 요리를 맛있게 먹어줘야 할 때도 있다는 걸.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위해 싫어하는 것을 극복하고, 더욱더 용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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