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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Dec 14. 2022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출산 그 후

엄마는 누가 챙겨주나요?

SNS에는 사랑스러운 아이,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행복한 엄마들 뿐이다. 아이를 낳으면 나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한 순간이 넘쳐나는 만큼 지치고 힘든 시간들도 마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로소 부모가 돼서야 만 사진 속 엄마들의 미소 뒤에 숨겨진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후우울증,


내가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원하던 아이였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니 걸릴 이유가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내 마음과 같지 않았고, 우울이라는 감정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지나간 그 자리에 불안함은 오래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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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이튿날, 병원에서 퇴원했다. 출산 시 회음부 절개는 하지 않았지만 아기가 나오면서 조금 찢어진 부분이 쓰라렸다. 가슴은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고 아파왔다. 호르몬 노예가 되어 하루 종일 감정 기복은 롤러코스터급. 생리보다 양이 많은 오로는 언제 멈추는 것일까? 손과 발은 또 왜 이리 붓는지. 잠은 제대로 못 잔 지 삼일째였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몸은 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 경고를 무시했고 마침내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9월이었지만 여름 같은 무더위에 몸이 축 처져있었다. 아기는 잠에서 깨어 울고 있는데, 도저히 움직일 힘이 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젖을 물려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거부한다. 울면서 몸을 뒤로 젖히는 아기를 손으로 꽉 붙잡아 입을 억지로 젖에 가까이 대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더 큰 울음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울음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이를 달랬을 텐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아기를 침대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켜봤다. 그랬더니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나는 듯했다. 바로 내 옆에 있는데,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내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얀 백지처럼 변하더니, 눈물이 났다. 분명 슬프진 않았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를 흔드는 움직임에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그곳에 있었다. 그의 품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제정신이 돌아왔다.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내 감정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그때는 왜 숨기고 싶었을까?




모유수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기도 하지만 임신했을 때는 모유수유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2.2킬로인 작은 체구로 태어난 아가에게 병원에선 혼합수유를 권했다. 살이 오르게 하려면 먼저 젖을 물리고 그다음, 분유를 타서 먹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병원에선 잘 물던 젖을, 젖병에 탄 분유를 맛본 순간부터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유 전쟁의 시작은 그러했다. 혹시나 해서 수유시간마다 젖을 물려봤지만 아기는 거부했다. 우는 아기를 달래 줄 시간도 없이 분유를 타거나 유축된 모유를 데우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아기가 낮잠 잘 때는 젖양이 줄어들지 않게 유축을 해야 했다. 아이가 젖을 잘 물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하루 종일 허덕였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결국 완모는 하지 못했다. 6개월 동안 혼합수유를 하고, 분유로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으면서 모유수유에 집착했어야 됐나 싶다. 내 욕심을 내려놓았다라면, 아기와 나, 둘 다 더 즐거운 수유시간을 보냈을 텐데 말이다.



정체성,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엄마가 돼서야 깨달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건너 '아이'에게 향하는 게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했다.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갔는데, 하루아침 사이에 바뀐 상황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엄마는 누가 챙겨주나요? 누군가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라는 따듯한 말 한마디를 마음속 깊이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출산 후 몇 개월 동안은 엄마도 케어가 필요하다.


지금은 오히려 아이   발짝 물러나 있는  다른 나의 모습을 즐기고 있지만, 처음에는 새로운 역할과 상황들이 굉장히 낯설었다. 지금 이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엄마인  ‘사이의 중간점을 찾아 나서다 보면, 언젠간 그런 마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제일 중요한  나까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는 만들지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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