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에는 산후조리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출산 바로 직후부터 육아는 시작된다.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에 희미해진 정신이 돌아왔다. 위급상황에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최고점을 찍은 후 정상범위로 돌아갔고,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남아 온몸을 지배했다. 간호사가 아이를 내 가슴에 올려놓자, 마법처럼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따듯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 그 순간도 잠시, 아이의 움직임이 나를 현실로 이끌었다. 본능적으로 입술을 뻐끔거리며, 젖을 찾는 듯했다. 다행히도 울음이 터질 직전 원하는 것을 얻은 아이에게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이 모든 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침 9시에 입원해, 오후 8시 12분에 아기를 만났다. 10시간 이상 진통을 겪으면서 나는 출산이 마라톤과 참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을 달리다 보면 육체적으로 지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몸이 힘들면 마음도 그렇지 않던가.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마라톤에 결승점이 있듯이 출산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힘을 다했다. 결승점에 도달하면 또 다른 출발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아이는 우리와 함께 병실로 옮겨졌다. 남편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는 나오지 않는 젖을 물렸다.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배가 고팠는지, 아기는 더 크게 울었다. 그리고 그렇게 울다 지쳐 다시 잠에 들었다.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다른 병실에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쪽잠을 자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고 나니 벌써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 퇴원해도 된다고 한다. 어제 출산했는데, 내일 퇴원이라니. 뭐 놀랍지도 않다. 아이를 출산하고 며칠도 안 되는 갓난아이와 함께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는 스페인이니까. 오히려 감사했다. 퇴원한다는 것은 아이도 나도 건강하다는 뜻이니까.
짧은 병원생활을 마치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 아빠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친정엄마가 가까운 곳에 사셔서 본가에서 2주 동안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병원을 떠나면서 산후조리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내가 TV로 접한 산후조리원은 마치 천국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침대에 편히 누워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24시간 밀착 육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은 산후조리 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이곳 스페인에서는 특별한 산후조리가 없다. 출산 후, 병원에서부터 평상시에 먹는 음식을 먹고, 출산 다음날 샤워도 권장한다. 몸을 따듯하게 유지하기보다는 먼저 차가운 음료를 건네기도 한다. 산후 마사지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유축 대신 직접 젖 물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좌욕기나 드라마에서 접한 파라핀 기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도 파라핀 기계가 무슨 효능을 가졌는지 잘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나의 산후조리는 마사지 대신 산책, 미역국 대신 햄버거가 되었다. 외국에서 출산을 겪으면서 이런저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산후조리 문화가 발달했을까? 동양인과 유럽인의 신체적 조건 때문일까? 출산 및 육아휴직 제도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냥 문화적 차이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