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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Jul 22. 2022

출산이 이리 아름다울 줄이야

'산모 굴욕 3종 세트'가 없는 나라

37주에 접어들면서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생각만 해도 숨이 텁텁 막힐 정도로 걱정되었고 나 자신이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을지. 숨을 참고 힘을 잘 줄 수 있을지. 혹시나 출산 도중 구토를 하거나 정신을 잃을까 무섭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욱더 몸의 힘을 빠지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출산 후기란 후기를 모조리 읽어보았지만, 도움은커녕 두려움만 늘어갔다. 고통의 신음과 비명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한국 병원에서 진행되는 출산 후기 읽은 탓일까. 이곳에서도 당연히 '산모 굴욕 3 세트' 관장, 제모, 그리고 회음부 절개가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음부 절개는 선택이었고, 제모와 관장 또한 그러했다.


'제모를 안 하고 왔는데 괜찮나요?'

'당연히 괜찮죠. 그게 왜 문제가 되죠?'

'관장은 언제 하나요?'

'원하신다면 안 해도 됩니다'





유도분만이기에 내진으로 자궁경부 상태부터 확인했다. 확인한 결과, 출산이 진행되고 있는  같다고 말씀하셨다. 일단,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자궁을 자극하는 호르몬을  속에 투약한 , 지켜보기로 했다. 자연적인 자궁 수축이 아닌,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여 후부터 12~24시간이 걸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투여하고 30 만에 배가 미친 듯이 아파졌다. 참을  있을 때까지 다가 결국 무통 주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다행히 자궁이 3센티미터 이상 열려있어서 바로 투여가 가능했다.


출산이 이리 아름다울 줄이야


무통 천국을 맛볼  알았으나, 그런  없었다. 투여하기 전보다는 괜찮아졌지만, 자궁과 다리가 3분마다 으스러질 정도로 아프다. 그나마 진통이  때마다 남편이 허리 부분을  눌러줬기에 견딜  있었던  같다. 그 당시에는 진통의 고통이 강해서 몰랐지만, 다음 날 등이 아파서 보니, 크고 새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참았고, 진통의 강도가 더욱더 세질 무렵, 진통제를  투입해달라고 말했다. 감사하게도 체크해 보시더니, 바로  의견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그제야, 말로만 듣던 무통 천국이 시작됐다.


간호사는 수시로 나와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10시간쯤 지났을까. 몸도 지칠 때로 지치고 정신도 희미해지고 있을 때, 자궁경부가 거의 다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힘주기 연습과 함께 간호사는 분주해졌고, 갑자기 아기 머리가 보인다며 남편에게 만져보고 싶으면 만져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간호사는 아기 머리를 내 자궁에 끼어놓은 상태로 의사를 호출하러 사라졌다.


마지막에 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투여해준 덕분에 출산하는 과정에선 그리 큰 고통은 없었다. 참을 만한 아픔이었기에, 아픔에 집중하기보다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픈 마음에 힘을 잘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출산 후기에서 들렸던 신음이나 비명소리는 없었다. 3번째 힘을 줄 때, 뜨거운 무언가가 밑으로 쓱 하고 나왔다. 그리고 다급한 의사 목소리가 들렸다.


"doble vuelta de cordón"


아기가 탯줄을 목에 두 바퀴나 감고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주 건강했고 탯줄을 자르자마자 내 가슴에 올려졌다. 갑자기 모든 게 슬로우 모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우리 아기. 우리 아기와 남편. 우리 세 가족. 이 모든 게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 따듯한 느낌을 평생 간직하고자 마음속에 잘 새겨두었다.



2.2킬로로 작은 아기였다. 탯줄을 목에 감고 있어서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그리고 아기를 이곳까지 안전하게 태어나게 해 준 모든 의료진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든 순간, 출산 주도권은 산모인 나에게 있었다.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기에 용감하고, 아름답고, 평안하게 순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산모의 선택과 권리를 존중하여 자연출산을 최대한 배려하는 출산법이다.


스페인에서는 대부분 자연주의 출산을 추구한다. 그 말은 즉시, 산모가 출산과정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출산은 다 다르다. 우린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방법이 아닌, 각 산모의 의견을 존중 반영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해야만 더 안전하고 아름다운 출산을 하게 될 테니까. 출산이라는 단어를 이제 두려움보다 아름다움과 연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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