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분만 전 날, 진통이 시작되다.
너무 늦기 전에,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자.
너를 만나기 위한 모든 과정을.
2021년 9월 2일 새벽.
이틀 전, 아기가 작다는 이유로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에는 파도처럼 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려 온종일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어제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진 내 모습을 맞이했다. 그렇게 힘입어, 출산 가방과 계속 미루고 있었던 일들을 하루 만에 모두 마쳤다.
내일 드디어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었던 소중하고 작은 우리 아기를 만나게 된다. 심장이 빨리 뛰기도 했다가 쪼그라들기도 하는 게 느껴졌다. 여행을 가기 전 들떠있는 전날 밤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 그 감정에 두려움을 더해야 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발로 찼다. 그 작은 움직임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태어나기 전 마지막 태동,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임신 기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기도한 뒤, 잠에 청했다. 긴장되면 늘 그렇듯, 뒤척이다 새벽에 잠이 들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고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2시, 이슬이 비치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배가 아파 잠에서 깼다.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중간에 몇 번 깼다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다르다. 아무리 졸려도 다시 잠에 들 수 없는 그런 아픔. 스페인에선 임신하면 산전 교육을 받게 되는데 거기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진통이 약할 땐 오지 마세요. 일어나서 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오셔야 합니다. 꼭 명심하세요.' 그래, 난 아직 멀었구나. 기다리는 동안 진통 시간이나 체크해야지. 5분 간격으로 40초 동안 배가 조여 온다.
움직이면 조금 괜찮아질까 해서 화장실에 갔는데, 어라? 빨간 이슬이 비쳤다. 그런데 왜 이리 반가운 걸까. 유도분만을 앞두고, 우리 아기는 나올 준비가 벌써 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다시 누웠다. 한 동안 뒤척이다 잠에 들었고, 눈을 뜨니 아침이 밝아 있었다. 어제 배가 사르르 아팠던 게 가진통이었을까, 진진통이었을까. 잠을 못 자서 너무 피곤한 것 빼고, 새벽에 아팠던 배는 다시 멀쩡해져 있었다. 남편에게 밤새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우린 병원으로 향했다. 둘에서 셋이 되어 돌아올 집을 뒤로한 채.
아침부터 병원에 사람이 많았다. 입원실이 꽉 차서, 대기실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스페인이란 나라에서 기다리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책을 읽어보려고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결국 책을 덮고,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긴장하면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들이 있는데 종합 세트처럼 모든 증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입이 바짝 마르고, 목소리가 잠기고, 손바닥은 땀범벅, 그리고 하품이 멈추지 않았다. 1시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던지. 기다림은 생각보다 나를 긴장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내 차례가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내진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유도분만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출산 후기를 읽으며 제일 피하고 싶었던 게 바로 내진이었는데 직접 느껴볼 순간이 왔다.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끝났다. 불쾌했지만 참을 만했다. 너무 겁먹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결과는, 자궁 경부가 부드러워졌고, 1센티쯤 열렸다고 하셨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야호!
"아기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오늘 저녁쯤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9월 2일.
드디어 우리 아기를 만나는구나.
De pronto empecé a sentir mariposas en el estómago. (나비가 배 안을 날아다니는 느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