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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Jul 03. 2022

자연분만이 아니라니.

주수보다 작은 아기, 유도분만 결정.

2021년 8원 31일. 

임신 38주. 


출산 예정일이 10일도 남지 않았다. 우린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했다. 마드리드 여름은 아주 건조하다. 비가 오는 날이 드문데,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3주 전 진료에서 아기가 작아 보인다고 하신 말씀 때문이었을까, 불안한 마음이 살짝 올라왔다. 그날따라 차례를 기다리면서 왜 이리 초조한지. 그 시간도 잠시, 몇 분 기다리지 않았는데 이름이 불렸고, 초음파를 통해 아기를 만났다. 다행히 잘 움직이고, 우렁찬 심장 소리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곳 스페인에서는 국립병원에서의 진료는 모두 무료다. 하지만 하루에 수많은 환자를 받다 보니 그만큼 느리고, 때론 불친절하기도 하다. 임신 초반에 몇 번 진료받으러 갔었지만, 결국 사립 병원을 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선생님께서는 아기의 머리, 몸, 다리를 측정하셨다.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본 순간, 엄마의 직감이랄까. 아기가 3주 동안 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쉰다고 쉬었는데. 38주였지만 2키로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몸무게가 2퍼센타일 밖에 되지 않는.


백분위수(Percentile)는 크기가 있는 값들로 이뤄진 자료를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백분율로 나타낸 특정 위치의 값을 이르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은 것부터 나열하여 가장 작은 것을 0, 가장 큰 것을 100으로 한다. 100개의 값을 가진 어떤 자료의 20 백분위수는 그 자료의 값들 중 20번째로 작은 값을 뜻한다. 50 백분위수는 중앙값과 같다. (위키백과)


그 말인즉슨, 같은 성별, 같은 나이의 아기 100명 가운데 50이 중간에 해당한다면, 우리 아기는 그 100명 중의 2명째, 평균치를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물으셨다. 


"내일 모래 시간 어떠세요?"

"괜찮은데, 왜 물어보시는 거죠?"

"아침 9시까지 병원에 입원하세요. 유도분만 하겠습니다.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자라고 있지 않아서 나와서 키워야 해요."


아기가 작은 이유는 유전일 수도 있으나, 아기가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크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 내일모레 아기를 만날 수 있게 되어 기뻐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진료실을 나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병원을 나설 때까지 꾹 참고 있던 감정들을 엄마의 전화 한 통화에 터져버렸다. 휴대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집에 가는 30분 동안 눈물만 흘렸다.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뱃속에서 잘 크지 못한 아기에게 미안했다.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영양 생각 없이 아무거나 먹은 탓일까. 작고 약한 나 때문일까. 배가 비교적 작긴 했지만 거의 막달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크고 있다고 하셔서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옆에서 남편은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속상하고,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임신기간 내내 당연히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을 거라 생각을 했었는데, 유도분만이라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자연진통이 시작되거나,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일 모래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마음에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채.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솔직히 두렵고 무서웠다. 


유도분만을 시도한 첫날에 출산 성공할 확률을 낮다고 들었다. 진행이 잘 안 되거나 산모가 정신적, 체력적으로 지쳐 있는 상황이 되면 대부분 제왕절개 분만을 권유받는다고. 또 인위적으로 약물을 투입해 진통을 유도하는 방법이라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모가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탓일까. 더 긴장됐다. 하지만 가만히 기다릴 시간조차 없었다. 출산 가방도 준비하고, 집 정리, 남편과의 마지막 만찬까지 이틀 만에 다 마쳐야 할 일들이다. 



속상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조급함으로 변하기 전에 모든 걸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라는 마인드를 정착했다. 그랬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출산 전날 저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하나만 남았다. 나만의 시간 갖기.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 긴장 탓에 웅크려있던 몸을 풀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배가 스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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