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있잖아요, 오늘은 제 생일이었어요.
생일 선물로 만원을 받았어요. 그걸로 원하는 거 사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BYC 맡은 편 문방구에서 디지바이스를 샀어요. 친구들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었거든요.
사실 살 때, 기분이 신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혼날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거든요. 원하는 거 사라고 했다 해도 이건 안될 것 같은데, 하고요.
그걸 사들고 집에 조심히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혼났어요. 누가 오락기를 사도 된다고 그랬냐면서, 당장 환불하고 오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이미 뜯은 물건을 환불하라고 보내는데, 문방구 아저씨가 싫어할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문방구 앞,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계속 서성거렸어요. 문방구로 들어가진 못하겠더라구요. 무서웠어요.
그렇다고 집으러 가면 맞을 것 같고.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더니 왜 이렇게 안 오냐고 찾으러 오더라구요.
찾으러 와서는 얼굴을 보자마자 아직도 환불 안 했냐고 혼냈어요.
혼나는 거보다, 맞을 것보다, 저를 끌고 환불하러 갈까 봐 무서웠어요.
뜯은 물건은 환불 못하는 게 규칙인데...
그래도 결국 환불은 안 했어요. 다행히.
그냥 집으로 가더라구요. 집에 가면 두고 보자면서.
집에 가서는 맞았어요.
그리고 새로 산 디지바이스는 눈치가 보여서 가지고 놀지도 못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요?
시간이 좀 지나면 좋은 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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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많이 서러웠겠다. 그죠?
남들 다 신나는 생일인데도 한 번도 신나 본 적이 없다가, 이렇게 이제는 기분 좀 내나 했더니 또 혼이나 나고. 남한테 피해 끼치면 안 된다 그렇게 이야기해놓고는 막상 지키지는 않고.
참 헷갈리는 양반들이에요.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해가 되는 선에서 행동했으면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이건 시간이 많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정말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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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좋은 일이 있다고 이야기해 줘야 할지,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해줘야 할지, 그래도 부모이니 너무 미워하지는 마라 해줘야 할지.
글쎄요, 어떤 말이건 들으면 너무 섭섭할 것 같은걸.
결국 또 지금은 참고 지나가라는 소리니까.
그래서 모르겠네요 참. 제대로 자라지 못한 어른이라 그런지, 이럴 때 위로가 되는 멋진 말 한마디도 쉽게 못고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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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20년 뒤의 나는 재밌고 즐겁고 알찬 삶을 보내고 있을지 참 궁금하죠?
미안해요. 이렇게 되고야 말았답니다.
멋지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요, 갖고 싶은 것은 실컷 가질 수 있고, 늦게까지 안 자고 게임할 수도 있어요. 심지어는 게임하는 게 이제는 너무 귀찮고 질려서 안 하는 경지까지 왔어요.
치킨도 실컷 먹고요, 비행기도 얼마든 탈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튼 이루고 싶던 것은 결국엔 다 이루게 됐네요.
그치만.. 역시 이런 말이 썩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죠?
대신에, 내가 욕이라도 해 줄게요. 천하의 나쁜 부모라고. 그따위로 해놓고 뭘 좋은 대접 바라냐고.
아무튼, 좋은 얘기는 못해줘도, 꼭 한 번 끌어안아 주는 것은 못해줘도, 이렇게 옆에서 같이 욕이나 한 번 시원하게 해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담아두지 말고 잘 털어버리고 지냈으면 해요.
10년이고, 20년이고 담아두지 말고, 내가 그만큼 욕해줄 테니까, 동네방네 나쁜 사람들이라고 다 알릴 테니까, 좋은 기분만 가지고 지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세요. 비록 지금의 나는 그게 무슨 기분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아직은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 기분.
그러니까, 그게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도 못되더라도 꼭 행복했으면 해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