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의 밤

by 옆집 사람

1961년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 '솔라리스의 바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SF 소설이다. 오늘 밤은 문득 이 책이 생각이 난다.



서구 형이상학은 전통적으로 존재를 이해하고 총괄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생각 어쩌구 존재 저쩌구 하는 뭐 그런 얘기.

아무튼, 그쪽 세계관에서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개념화·분류·동일화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천혜향은 둥글고 주황빛이 도는 과일의 일종. 약간의 산미와 단맛이 느껴진다. 귤 혹은 오렌지와 유사하다' 하고 정립하는 것처럼.

이 과정을 타자에게 시도할 때, 타자는 천혜향과 같이, '나'의 인식의 틀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나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타자를 분류하고, 개념화하며, 특정 형상과 동일화하려 시도한다.

그렇지만, 타자를 이해가능한 대상으로 여기는 순간, 타자와의 경계는 사라지고 타자는 더 이상 타자로 남지 않는다. '나'의 연장선이 된다. 오늘따라 유달리 표정이 좋지 못한 상대를 보며, 우리는 '음. 오늘 쟤 기분 나쁜 일이 있나 봐'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사실 지금 상대의 표정은 '오늘 점심 뭐 먹지 얼굴', 혹은 '원래 이목구비가 시무룩하게 배열되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고민하는 중이거나, 원래 그렇게 생겼는데 몰랐거나. 이처럼 우리는 '나'의 경험으로만 타자를 이해하려 든다.

레비나스는 말한다. '타자는 나의 이해를 초월한 존재이다. 타인을 이해하려 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타자로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인은 '솔라리스의 바다'와 같이, 환원 불가한 타자로 남겨둬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인류는 여전히 '솔라리스의 바다'를 파헤치려 들지만.



요즈음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사람들을 유달리 많이도 만났다. 아니, 사실 '만났다고 생각한다'가 맞겠지만. 지금껏 잘난 척 오지게 하면서 써내려 온 <솔라리스>고, '레비나스의 타자'고 하는 것들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그거니까.

그러니 순전히 내 기준으로 이상한 사건이고, 이해 못 할 사람들이었겠지, 그들에게는 내가 반대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소에 그리도 머리에 먹물을 가득 채우려 노력을 하는데, 실전에서는 전혀 써먹지도 못하고,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한테 잘난 척 한 마당 여는 데에나 써먹고나 있다.

하긴 뭐, 이소라도 '그대는 내가 아니다'라고 십수 년을 노래 불러 놓고는, 내가 좋아하는 건모 오빠 어쩌구 하며 난동 부렸으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보다 싶기도 하고?



<빅뱅이론>이라는 드라마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와 꼭 맞는 소울메이트 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느냐?'

주인공 중 한 명인 라제쉬는 그렇다 답한다. 상대는 되묻는다.

'만약 있다 치더라도, 사는 곳이 너무 다르거나 나이차가 너무 심해, 혹은 태어난 시대가 달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 나와 꼭 닮은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곳에 태어날 확률은 말이 안 된다. 그래도 믿는다고?'

라제쉬는 여전히 그렇다 답한다.

주인공 일행 중, 그리 답한 라제쉬만이 종영 때 까지도 제 짝을 찾지 못했다.



삼십여 년을 살아왔지만, 내게 타인은 여전히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배운 사람들은 그게 잘하고 있는 거 랜다. 심지어 딴 나라 시트콤조차 '너랑 같은 사람은 없어'라고 가르친다.

그래, 뭐 너네가 잘 살고 있는 거라면 그게 맞겠지 뭐. 그치만 그리 대단히 잘 살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솔라리스>가 둥둥 떠다니는 밤은 왜 찾아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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