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사 구픽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001
30대 후반이 되자 조바심이 들었다. 100세 시대라는데 내가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건 몇 살까지일까. 딱히 모험심도 없고 큰일을 벌이지도 않는 데다 별로 튀지 않는 스타일이라 크게 밉보이지만 않는다면 대략 45세까지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가늠해보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맘대로 될 리가 있나. 사회와 트렌드가 급변하고 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내 머리도 커지면서 과연 조직에 계속 있어야 할까, 나도 뭘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재받기가 싫었다.
1인 출판사를 시작해볼까. 아직도 많이 남은 인생, 15년 남짓 해온 종이책 편집자,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 내 중년과 노년에 필요한 자금을 위해 이것 외에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적게 들이고 적게 벌지만 그나마 내가 쌓은 경력을 믿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이것 아닌가.
하지만, 수많은 다음 생각들이 몰려왔다.
나는 철두철미한 인간이 아니다.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인 면이 많고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한다. 사실 이런 성향인데도 상대적으로 덜 튀어 보이는 이유는 소심한 데다 천성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결정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긴 시간을 들여 고민하면 내 스스로 그 시간 내내 괴로워할 걸 알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버리고, 반면에 해야 할 물리적인 일은 최대한, 아주 최대한 미뤄놓았다가 몰아치기 때문에 매사 준비가 덜 되어 난관에 처했던 적도 없지 않았다.
거기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 맺는 것을 못하는 내가…. 이 문제는 1인 출판을 시작하며 나의 가장 큰 고민이 되었다. 사실 회사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일보단 사람. 협업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뒷말은 많고 결재는 받으러 갈 때마다 두통이 몰려온다. 원래부터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이런 문제를 싹 걷어낸다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낯가림 심한 내가 새로운 거래처들과는 어떻게 안면을 틀 것이며 책이 나올 때마다 온오프라인 서점 MD 미팅은 어떻게 유려하게 진행할 것이며 그 외에 새롭게 부딪힐 수많은 새 얼굴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을까.
여기에, 사실 가장 중요한 사업 자금. 주거비를 제외하고 현재 모은 돈과 퇴직금으로 사업을 벌였을 때 최대로 투자할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 얼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언제부터 순이익을 낼 수 있을까. 사실 일을 하면 할수록 베스트셀러는 복불복이라는 생각이 더욱 많이 들기에, 대체 무엇이 돈이 될 책이고 아닐지 판단하기가 점점 쉽지가 않다. 거기다 내가 마케팅과 홍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귀동냥으로 소문이나 들을 뿐이지 뭔가를 제대로 된 계획하에 내 힘으로 팔아본 적이 있나?
이런 내가 과연 사업을 시작해도 될까. 지나가듯 지인들에게 얘기하면 7대 3 정도로 말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해보라는 3의 사람들도 마냥 “넌 잘할 거야, 파이팅”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 봐. 빨리 망해야 회사에 또 입사할 수 있다”였지.
아, 맞는 말이다. 빨리 망해야 다시 입사할 수 있지. 우습게도, 한번 시작해보자 1인 출판, 이 마음을 가장 결정적으로 가지게 해준 건 저 말이었다. 30대 후반, 지금 시작해서 3년 안에 망하면 40대 초반. 어느 출판사 경력직이라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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