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이 덜 닫힌
열린 틈새로 중요한 열기가 솔솔 빠져 나오는
늙음에 이르러서는 열기 마저도 희미한
시종일관 낙천에 편중되었던 삶을
아버지는 25일 0시 24분
시계바늘처럼 멈추었다
여행 날짜에 맞추어 비행기는 이륙했다
구름 아래로 뜯긴 껍질 같은 육지가 보였다
문자를 받고 전화를 걸어 장례를 부탁했다
아하, 이런 걸 산문적인 삶이라고 하나
간단한 기승전결 마저 흘려 버리고 아버지는
빈한하되 구차하지 않은 삶을
술병처럼 뉘였다
병원 복도에서
우리는 마주 서 있었다
그 때는 이미 저승 손님의 부름을 받고
의사가 저고리 윗주머니에 청진기를 넣은 상태였다
흰 벽은 말이 없었고 크림색 햇살이 잿빛 머리칼을
역광으로 비추는 늦은 오후의 커피 한 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젯상에 올려야 할까
아버지는 참 맛나게 드셨다
잔소리 따위,
한 잔 술잔에 희석 시킬 줄 아시던 양반
그런 아버지를 가진 게 다행스러웠다
과장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있는 자리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남겨 두고 갈 교훈 한 마디 없는
담백한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