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길 Nov 02. 2020

인생이라는 모험 (영화 '업')

‘비제’(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영화 ‘업’ (2009)

주연 : 에드워드 애스너 / 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애니메이션, 즉 만화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아니 굳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다 눈시울을 붉혔던 적은? 이러한 물음에 ‘한 때는’이라는 답변이 아마도 가장 많이 돌아 오지 않을까? 어느 샌가 우리에겐 ‘어른’이라는 원치 않던 자물쇠 같은 이름표가 붙여졌고 눈물은 멀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하물며 어린애들이나 볼 법한 만화 영화를 보며 다 큰 어른이 눈물이라니.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정서에 있어 눈물이 주는 해소 작용의 효과는 이미 널리 알려졌을 뿐 아니라 누구나가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게 쉽게 눈물을 내 보일 순 없다. 약해 보이고 청승맞아 보인다는 편협한 폭력적 시선이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공감과 감동으로 빚어진 눈물은 그 어떠한 것보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인한 끈이라는 것이다. 


서로를 만나 행복한 칼과 엘리


 여행가를 꿈꾸는 칼, 오늘도 세계적인 탐험가의 영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어느 허름한 폐가에서 탐험가로서 자신보다 더한 꿈을 키우고 있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리고 둘은 자라 서로를 이해하는 부부가 되고,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신의 정원을 향한 모험의 꿈 또한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은 그들의 꿈을 지워가고 어느덧 황혼에 접어 든 그들. 평생을 사랑한 아내는 칼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오프닝. 감히 말하자면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답고도 애틋한 오프닝임을 말해 두는 바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욱 나이가 들어 혼자 남게 된 칼은 아내와 지내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아내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가운데 덩그러니 남은 집. 하지만 칼은 결국 그 집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공간, 칼은 셀 수 없이 많은 풍선을 집에 매달아 공중부양, 이제 그토록 그리던 꿈의 그곳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앞서 눈물에 관해 이야기했었고 이제 나는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 장면에서의 아름다움과 판타지에 눈물을 펑펑 쏟았었고 누구나가 가슴 속에 뜨거운 감정이 솟아났을 것임을 말이다. 그렇게 어릴 적 꿈꾸던 여정을 시작한 칼, 사랑하는 아내와 약속했던 곳을 향해 떠나는 그는 과연 어떠한 모험과 마주하게 될까? 


꿈꾸던 여정, 만나 볼 모험


 아내를 떠나 보내고 이제 제 한 몸 가누기가 힘들어 기계의 힘을 빌어 계단을 내려오는 칼, 그리고 조촐한 아침식사와 주위가 공사장으로 변한 자신의 집 앞 의자까지의 짧지만 그에게는 힘든 여정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코믹하게 흐르던 곡이 있다. 바로 프랑스가 낳은 천재 작곡가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중 '하바네라' (Habanera)이다. 


‘비제’(Georges Bizet, 1838-1875)


 많은 작곡가들이 그러했듯 어릴 적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인 비제는 1857년 로마 대상을 수상, 3년간의 로마 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지만 작곡가의 삶을 지내지 못한다. 그러다 찾아온 기회, 리리크 극장의 오페라 현상모집에 그의 <진주잡이>(Les pêcheurs de perles)가 당선되며 진정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후 많은 작품을 남기며 창작을 이어가지만 역시 그의 대표작이라면 오페라 <카르멘>이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의 이름은 불멸이 되었고 그만큼 아름다운 곡들로 가득하며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로 대중을 사로잡는 걸작인 것이다. 전문가는 진품을 알아보는 것일까? 새로운 명작의 탄생에 많은 음악가들이 찬사를 보낸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하나의 음표도 버릴 것이 없다며 극찬했고, 철학자 '니체' (Nietzsche)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는 표현으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표하였으며, 작곡가 '브람스 '(Brahms) 역시 20번이 넘는 관람으로 그 예술적 성과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청중의 반응은 그러지 못했는데 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캐릭터의 여주인공 때문이었다. 전통적이고 순종적인 여주인공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에게 카르멘은 당시의 사회적 관념을 뛰어 넘는 관능적이고도 자기주도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당시 하층민이라 할 집시들이 떼지어 등장해 웅성거리며 밀수를 하고, 결투를 벌이다 마침내 죽음으로 그 막을 내리니 관객들을 더욱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이러한 이야기는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카르멘의 등장'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집시 카르멘, 그녀에게 매혹된 호세는 군인으로서의 소명조차 버리며 빠져들게 되지만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보수적이며 진지한 그에 비해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 호세, 죄를 지은 그녀를 호송하던 중 결국 유혹에 넘어가고 그녀는 도주에 성공한다. / 파스티아의 어느 술집, 카르멘과 집시들이 함께 부르는 '집시의 노래'(Les tringles des sistres tintaient)가 끝나자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등장하며 '투우사의 노래'(Votre toast)를 부른다. 이곳에서 호세는 '꽃노래'(La fleur que tu m’avais jetee)를 부르며 카르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다 결국 그녀를 체포하러 온 상관과 싸움까지 벌이게 된 호세, 그는 이제 집시들과 함께 방랑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다. / 범죄자가 되어 쫓기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회의를 느끼는 호세, 그런 그를 보며 카르멘은 더 이상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느낀다. 이때 카르멘을 찾아 온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그녀를 투우장으로 초대하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단 소식을 전해 들은 호세는 질투심과 증오를 안고 고향으로 향한다. / 드디어 운명의 투우장, 현장에 있는 듯 박진감 넘치는 투우사의 합창에 이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듯 함께 입장하는 카르멘과 에스카미요, 그곳을 찾은 호세는 다시 시작하자며 애원해 보지만 차갑게 거절당하고 결국 분노에 눈이 멀어 그녀를 칼로 찌르고 만다. 그렇게 쓰러져 내린 그녀를 안고 울부짖는 호세, ‘오! 카르멘, 나의 사랑.’ 

이러한 내용 중 영화에 사용된 '하바네라'는 오페라의 전반부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노동자 카르멘이 등장해 호세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관능적인 노래다. 그리고 이때 그녀가 던져준 꽃은 호세의 영혼을 빼앗으며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봐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 


'사랑은 소유할 수 없는 것'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칼은 자신이 소중히 간직해 오던 모험 노트, 정확히는 모험 계획 노트를 펼쳐보다 이제껏 확인하지 못했던 사랑하는 아내의 메모를 확인하게 된다. ‘이 인생이라는 멋진 여행을 선물해 준 당신에게 고마워요’ 아내의 꿈을 이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칼은 살아왔지만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과의 인생이 행복한 여정이었으며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신나는 모험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업’. 단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만으로 만나기를 꺼려하는 많은 어른들이 있을 것이며 ‘풍선을 매달아 집이 날아간다고? 그게 말이 돼?’라고 황당해 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처럼 아름다운 영화를 놓치지 마시길 바라며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싶다.


“어벤저스는 말이 되고요?”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지금은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추천음반  



  

일단 극이 딸린 오페라이니 영상물을 먼저 추천하자면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가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Chor und Orchester der Wiener Staatsoper)를 지휘한 1978년 연주(TDK)를 들 수 있겠다. 호세 역을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기존의 유약한 호세가 아닌 사랑을 잃고 영혼이 파괴되어 가는 또 하나의 마초적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카르멘 역을 맡은 러시아의 국보급 메조소프라노 ‘엘레나 오브라스초바’(Elena Obraztsova) 역시 작품 속의 카르멘이 지녀야 할 카리스마와 야성미를 멋지게 뽑아낸다.

  

젊은 시절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패기가 온전히 담긴 1963년 음반 역시 놓쳐서는 안될 수연으로 악단과 지휘자, 그리고 합창단과 성악진 모두가 자기의 역할에서 최상의 결과를 엮어낸다. 특히 ‘레온타인 프라이스’ (Leontyne Price)가 지닌 음성은 집시 카르멘의 어둠과 관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그건 그 신발을 지금 신고 있기 때문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