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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Nov 04. 2020

나의 알프레도여, 안녕히.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모하며

이탈리아의 한 작은 시골마을, 영화가 좋은 꼬마 소년 토토가 살고 있다. 그곳엔 비롯 작은 마을이지만 시네마 천국이란 멋진 이름의 영화관이 있어 학교가 마치면 토토는 늘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알프레도, 토토는 그의 어깨 너머로 영사기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알프레도는 퉁명스럽지만 그런 소년의 꿈을 소중히 지켜준다. 나이차를 넘어 우정을 쌓아가는 둘. 그러던 어느 날, 극장에 화마가 닥치고 이로 인해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알프레도를 대신하여 어린 토토가 극장 일을 맡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살바토레(토토)는 영화를 향한 꿈을 이루고자 도시로 떠나고, 어느덧 어엿한 영화인이 된 그에게 들려온 슬픈 소식, 알프레도의 죽음. 그는 오래 전 친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고 지난 추억에 젖는다. 알프레도가 남긴 마지막 선물, 이를 지니고 도시로 돌아온 살바토레가 오래된 필름을 영사기에 걸었을 때 흘러나오는 영상, 그것은 친구가 남긴 마지막 인사이자 영화에 대한 헌사인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감동적인 장면과 함께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 OST 중 ‘러브 테마’(Love Theme)가 흐른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배,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된 갓난 아기. 이렇게 버려진 아기는 배에서 일하던 인부의 손에 의해 키워지고 그의 이름은 그가 발견된 해인 ‘1900’. 평생을 단 한번도 배에서 내린 적이 없는 그에게 그곳은 자신의 고향이자 터전이다. 또한 그는 피아노 연주의 천재로 배의 전속 재즈악단의 연주자이다. 소문이 퍼진 것일까? 유명 재즈 연주자가 그에게 도전하기 위하여 배에 오르고 그런 그를 보기 좋게 물리친 1900는 마침내 유명인사가 되어 자신의 연주를 음반으로 녹음하기에 이른다. 스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된 그의 연주, 배에 마련된 임시 스튜디오의 창을 향하여 다가오는 여인,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황홀한 연주를 이어간다. 이때 그가 연주하던 아름답던 피아노 선율, 바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 1998)의 OST 중 백미라 할 ‘Playing Love’다. 수백만 장을 복사, 배포하겠다는 스텝의 말에 그럴 수 없다며 녹음된 음반을 빼앗아 든 1900. 이 연주는 오직 그녀만을 위한 것이다. 


 



   지난 7월 6일,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 진다. 순간 감정이 올라왔으며 이는 오래된 친구를 잃은 듯, 아름답던 추억이 사라진 듯 안타까운 것이었다. 하긴 그는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음악 사랑을 지켜 준 추억이자 동반자였으며 현재였다. 하지만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1928년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태어나 한번도 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는 엔니오, 그는 1960년대 초 영화음악가로 데뷔해 지금까지 활동하며 400여 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만들어 낸 다작 작곡가다. 앞서 소개한 두 편의 영화 음악은 모두 그가 창조해 낸 유명한 선율이다. 비단 이뿐일까? 


   먼저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함에 있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호흡을 맞춘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를 먼저 놓아야 한다. <역마차>로 대변되는 정통 서부극과는 결이 다른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이라 할 이 시리즈에서 그는 자신만의 혁신적인 기법을 동원, 휘파람 소리와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며 서부 영화라 하면 떠 오르는 대표적인 선율적 이미지를 창조해 낸다. 


   이로써 세계적인 영화음악가로서 자리한 엔니오, 영화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로 드디어 영국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과 함께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첫 지명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4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음악을 맡으며 다시 한번 탁월한 선율적 감각을 보여준다. 대부 시리즈와 더불어 갱스터 무비의 대표작이라 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데보라의 테마’와 ‘카키 송’의 아름다움은 실로 놀랍다. 아마도 그 선율을 듣는다면 자연히 영화 속 인물과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으로 이는 유도동기적 효과의 절묘한 영화적 활용이다. 영화 <스코어: 영화음악의 모든 것>, 현 시대 영화음악의 최고의 거장 ‘한스 짐머’는 인터뷰를 통해 엔니오가 창조해내는 멜로디의 향연에 헌사를 바친다. 지금의 영화음악이란 것이 짧은 동기를 창조, 거듭 활용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멈추지 않는 선율 샘을 지닌 듯 새롭고도 아름다운 선율들을 지속적으로 창조해 내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를 두고 ‘선율의 마법사’라고들 한다. 하니 엔니오는 영화음악계의 ‘차이코프스키’인 것이다.


   그의 음악적 감각이 절정에 달했던 것일까? 이로부터 2년이 지나 드디어 영화 <미션>이 등장한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지금은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이 곡이 바로 엔니오가 영화 <미션>을 위하여 창조해낸 선율이다. 남미로 떠난 두 선교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미션>, 힘든 발을 잠시 쉬어 가던 주인공이 원주민들에게 위협당하자 자신의 악기 오보에로 마음을 전한다. 이러한 장면만으로도 감동적인 것이나 엔니오의 음악이 그 감동을 몇 갑절로 증폭시킴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제목만으로도 감동적인 ‘On Earth as It is in Heaven’(천국에서처럼 이 땅에도), 살아 엔니오가 가장 좋아했다는 이 곡은 그의 실황공연이면 항상 그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으로 그가 음악으로 전하려 했던 메시지이자 희망이다.





   이후에도 그의 창작력은 계속해서 빛을 발한다. 1987년 영화 <언터처블>, 1988년의 <시네마천국>, 1998년의 <피아니스트의 전설>, 2000년 <말레나>, 이렇듯 그 제목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작품들이 이어지다 마침내 2015년, 영화 <헤이트풀 8>을 통하여 그동안 인연을 맺지 못하던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수상내역은 특이한 것으로 그는 이미 2007년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기 때문이다. 공로상이란 영화사에 남긴 과거의 공적을 기리는 명예로운 것으로 이미 영화계를 떠난 이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엔니오는 공로상을 먼저 수상한 후 음악상을 받은 것이다. 


   이전 몇 차례의 후보 지명에도 수상의 영예를 얻지 못하던 그의 음악, 놀라운 것은 대표작이라 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시네마 천국>이 아예 후보로도 지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되었던 사건은 1987년 시상식에서의 <미션>. 이는 평소 온화한 성품을 지녔던 그조차도 분노케 한 것으로, 오리지널 스코어가 50%도 되지 않던 경쟁작이 <미션>을 제치고 음악상을 수상한 것이다. 객석은 야유로 가득 찼으면 엔니오는 자리를 박차고 시상식장을 빠져 나온다. 이는 아카데미의 편협성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건은 오히려 아카데미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일인뿐 그의 음악적 성과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그들은 과거를 반성하듯 엔니오에게 상을 안긴다. 이때 수상소감을 발표하던 거장의 눈시울이 붉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대, 영화 관련 어느 한 매체가 영화제작 드림 팀을 선정한 적이 있다. 물론 ‘재미 삼아’였으며 크게 의미를 둘 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영화계에 있어서의 영향력과 대중 인지도에 대한 참고사항 정도는 될 만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이때 영화음악 분야에서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다. 이처럼 아름답던 이가 우리의 곁을 떠나 갔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남았다. 우리는 200년 전의 음악가들이 만들어 낸 선율을 지금도 듣고 즐기며 감동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200년이 흐른 후엔? 만약 200년 후의 후손이 타임머신을 타고 나타나 이 시대에 자신들을 위하여 남긴 음악적 유산이 무엇이냐며 따진다면 나는 엔니오의 음악을 들려 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시간을 이기고 그 가치가 변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영화 <시네마천국> 속 살바토레(토토)가 알프레도의 선물을 영사기에 걸고는 눈물짓던 것처럼 그가 남긴 선율과 함께 깊은 추억에 빠져든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 그의 음악은 이러한 나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지켜주었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다. 하니 토토의 꿈을 소중히 지켜주던 알프레도처럼, 나에게 있어 엔니오는 음악의 알프레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알프레도’여, 편히 가세요. 그대는 비록 떠났으나 당신이 이루어 놓은 음악은 영원히 남아 우리의 가슴에 감동으로 기억되리니.  

   이제 그의 부고를 알리던 한 매체의 서문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그의 음악은 영화보다도 유명하다.’


 

엔니오 모리꼬네 데뷔 60주년 기념 베스트 음반

 (Ennio Morricone 60 Years of Music) [2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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