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버거운데 어떡하죠?

by 광장장



밥먹는 술집 광장의 독립잡지 "vando" 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vando는 서울 을지로의 광장, 제주도 무명서점과 수월에서 1년에 두 번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연자 : 수박


이것 저것 다 잘하고 싶어서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배는 즐겁고 신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규모가 불어나면서 가끔은 버거운데 이 버거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ㅠㅠ





책 추천 이진송 작가


안녕하세요, 수박님. 수박님이 보내신 고민을 보고 저는 저의 좌우명을 떠올렸습니다. '나나 잘하자'. 당장 저부터도 이런 저런 일을 잔뜩 벌이고, 때로는 일에 질질 끌려다니고, 그러다가 금방 흥미가 떨어지면 마무리 못한 일이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거든요. 수박님이 어떤 마음으로 일을 벌이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즐거운 것과 별개로 또 어떤 점에서 버겁게 느껴지는지를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 수박님에게, 신예희 님의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를 추천합니다. 부제는 '원하는 만큼 쉬고 필요한 만큼 일하는 20년차 프리랜서의 라이프 스타일 에세이'예요. 수박님의 직업은 제가 알 수 없지만,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일정과 노동을 컨트롤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어요. 만화도 그리고 글도 쓰고 방송도 하는 신예희 님의 산전수전 공중전 프리랜서 라이프를 따라가다 보면, '느슨한 완벽주의를 위하여',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힘에 대하여',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것에 대하여',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등 유용하고 주옥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열정이 넘쳐 닥치는 대로 일을 받다가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사람들과 거리 두는 법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의 삶을 찾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남의 눈에 화려하고 재밌어 보이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의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갈지 고민할 수 있었는데요. 수박님도 저도,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사이즈의 일을 측정하고 굴리는 균형을 익히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욕이 넘쳐 내달리고 싶은 날,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를 읽으며 한 박자 쉬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음식 추천 김광연 셰프


수박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박님의 이번 고민에 대한 대답은 냉수 한 잔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광장을 운영하며 광장의 일상 브이로그를 유튜브 채널 광장티비에 올리고 있지요. 그리고 광장의 소식지 반도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할로윈, 바캉스, 크리스마스에 1년에 몇 번씩 전시회도 개최합니다. 여기서 끝이냐고요? 다양한 술자리의 다양한 행사들에 함께 하며 그 와중에 라이브를 가고 소모임을 유치하지요.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또 다른 일을 하며 또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하기도 합니다. 일을 벌이는 바로 저, 저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부터 냉수 한 잔 들이키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일들을 하며 지치거나 이러다 번아웃이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일의 결과물이 나올 때의 기쁨과 희열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번아웃행 급행열차를 타고 돌진합니다. 수박님도 그렇겠죠? 그런 저를 떠올리며 무엇이 좋을까 먼저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을 냉수말곤 떠오르지 않았다는 건 비밀이에요) 천천히 정성들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떠올렸어요. 급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으며 먹는 행위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메뉴요.

가시 많은 생선인 전어로 만든 조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무와 채소를 깔고 찌듯이 구워낸 전어에 고춧가루, 간장으로 양념장을 만들어서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여냅니다. 생선 육수를 잔뜩 머금은 양념된 무는 밥도둑이 따로 없잖아요. 소스에 밥을 비벼먹어도 좋지요. 하지만 먼저 생선 살을 잘 발라내야 합니다. 얇고 가득한 뼈들 사이로 촘촘히 들어찬 살들을 발라내야 해요.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얇고 많거든요. 왜 이런 걸 조림으로 먹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중해서 살을 발라냅니다. 회로는 뼈 채로 먹기도 하지만 많은 칼집을 내서 긴 뼈를 잘라내야만 먹을 수 있죠. 대충 발라서 그 얇고 긴 뼈를 삼켰다가는 병원 신세를 지기 딱 좋습니다. 그러니 한 순간도 집중을 흐리면 안 돼요. 그 때는 어떤 새로운 일도 약속도, 프로젝트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얇은 가시들 사이로 고소한 살이 촘촘히 박힌 전어는 뼈를 발라내 먹는 것이 무척 수고스럽거든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가을 전어의 맛은 집 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그렇게 잘 발라낸 살을 밥 위에 올리고요. 물러진 무, 그리고 졸여진 양념장을 같이 올려 참기름을 휙 둘러내 밥과 비벼 주세요. 그 노력이 무색하게 금방 먹어 버릴지 모르지만 절대 후회할 수 없는 맛이에요.

꽤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고 쉽게 해낼 수 있는 일도 있죠. 어떤 일을 하든 열매가 달다면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겠지만, 즐거움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버거워지면 결과 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아프면 그게 무슨 불행인가요. 밥을 잘 챙겨먹는 것 그게 더 즐겁고 더 오래 일을 벌이기에 최적화된 체력을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박님을 위해서 잔인한 전어조림을 만들어 놓고 기다릴게요. 젓가락질에 손목이 지치지 않도록 팔목을 잔뜩 풀고 오세요. 전어조림을 먹는 시간들, 모든 걸 잊고 음식에만 집중하며 머리를 비울 수 있도록 따뜻하게 만들어 놓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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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광장장은 고민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고요, 책 쓰는 짐송은 고민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려요.

사연이 실리게 되면 광장에서의 식사시간을 갖거나 짐송님의 추천 책을 보내 드립니다.

사연은 익명 참가도 가능합니다. 사연이 모이면 출판도 기획하고 있으며, 보내실 때 출판 동의/비동의 여부도 함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양한 사연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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