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어떻게 해야 인생이 재밌어질까요?

by 광장장

사연자 : 인텔리황


인생이 재미가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20대 후반 여자 사람입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왔고, 취업했어요. 지금의 직장은 그냥저냥 만족스럽고 가끔 퇴사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나날들은 잘 다니고 월급 받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인생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비혼주의자가 된 이후로 제 인생에 더 이상 빅 이벤트가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냥 이렇게 재미없는 인생을 계속 살다가 삶을 마감할 것 같아요. 취업을 하고 나니 주체적으로 삶의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그저 밥 굶지 않는 거 빼고는 딱히 목표도 없는 것 같아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래도 대학생 때 열심히 놀고 파란만장한 연애도 해 봤는데, 저는 태생이 뚝딱이라 클럽에 가도 즐기질 못해 몇 번 가지 못했으며, 마지막 연애가 5년 전 딱 한 달 만나고 헤어진 게 전부입니다.

삶을 다채롭게 채워보고자 독서모임도 다니고, 취미도 만들고, 공부도 하면서 24시간을 알차게 쓰려고 노력해 봤지만 도통 성취감도 없고 재미도 없습니다. 이럴 땐 뭘 어떻게 해야 인생이 재밌어질까요?






책 추천 이진송 작가


안녕하세요, 인텔리황님.

저는 얼마 전 친한 친구로부터 결혼식 축사 부탁을 받았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했던 친구는 언젠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이제 회사 일도 익숙하고 오래 사귄 애인도 일상이다. 뭔가 변화가… 새로운 퀘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송아,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고 애를 낳나 봐.” 그때 저는 몸은 편하지만 아무런 성취감이 없는 업무에 한참 시들어가고 있었어요. 친구와 상황은 다르지만 그게 어떤 마음인지 대번에 알 것 같았죠. 인생은 좀 더 드라마틱한 무엇 같은데, 지금의 내 삶은 이게 전부인 것 같고. 이대로는 뭔가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 들고...


사람이 참 신기해요.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땐 그냥저냥 잘 살기만 바라지만 막상 그런 날이 일상이 되면 축축 처지잖아요. 변화, 빅 이벤트, 성취 같은 것에 뛰는 심장… 역시 예쁘게 농장 꾸미라고 만든 게임에서조차 미친 듯이 농사짓고 장사해서 집을 사는 한국인의 피 때문일까요? 친구의 그 말은 출산이나 육아를 성취감의 영역에서 처음 바라보게 했고, 일이 힘들지도 않은데 그만두고 싶어 하는 자신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인간은 결국 재미가 필요한 존재였던 거예요. 성취든, 보상이든, 하다못해 위기마저도.


김신지 작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알에이치코리아, 2020)는 주말이라는 ‘특별함’에 가리어져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월화수목금’ 요일을 발견하는 책이에요. “나는 끊임없이 더 나은 무언가를 찾아 노력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느라 현재를 희생하고 싶지도 않다.”, “오늘은 큰 그림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오늘이니까.”라고 말하는 작가와 함께 무심코 흘려보냈던 나의 평일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인텔리황님의 글을 읽으며 문득 저도 스스로를 돌아봤어요. 재미의 기준이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른데, ‘나’에게 재미란 무엇일까? ‘다채로운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그렇지 못한’ 나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연애나 클럽, 독서 모임 말고(그러니까 세상이 재미있는 거라고 말하는 활동 말고) 그저 꾸준히 지속해온 일이 있을까? 이것저것 해보는데 성취감이 없다면 나는 사실 ‘그’ 성취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요.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방송을 매주 챙겨 보는데요. 크게 의미 있는 활동도 아니고 30대 중반에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흠일 수도 있죠. 그래도 그렇게 흘려보내는 일주일의 몇십 분이 저한테는 재미의 루틴이에요. 유익하고 활기찬 것만이 아니라, 좀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도 나만의 재미가 될 수 있죠. 평일도 인생이듯, 꼭 특별한 것만이 재미이고 내 인생의 의미가 아니듯. 인텔리황님은 인텔리황님만의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요리 추천 김광연 셰프



광장의 봄, 여름 메뉴 중에 명란버터우동이라는 메뉴가 있어요. 명란 마요네즈와 버터 조각, 김 그리고 파가 올라갑니다. 이 음식을 주문하면 음식에 설명서가 함께 제공돼요.


1. 버터를 면에 녹이며 재료를 잘 섞어주고 맛을 봅니다.

2. 간장소스를 뿌리고 섞어서 드세요.

3. 1,2 젓가락 정도 남으면 식초를 뿌리고 마지막 맛을 즐기면 됩니다.


이 음식은 하나로 3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메뉴입니다. 조금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설명서를 읽고 간장소스나 식초를 조금씩 뿌려서 맛을 본 다음 자신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맛을 즐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보통은 설명서대로 맛을 보며 1번 혹은 2번의 맛이 가장 취향인데 이미 섞여버린 소스 맛에 아쉬워할 수도 있고요. 간장소스를 혹은 식초를 얼마 안 남기고 뿌릴걸... 하고 후회해도 음식을 다시 시키지 않는 이상 이전의 맛은 볼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영 입에 맞지 않고 아쉬움이 남아 새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접시의 시작은 썩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다른 날 다시 와서 주문하는 건 또 다른 날, 또 다른 계절, 또 다른 기분일 테니 오늘 맛있다고 느낀 것과 다른 맛으로 느껴질 테고, 주의 깊게 조금씩 맛본 사람도 소스들을 휘휘 저어 가득 한 입 먹어보는 맛과 완전히 같은 맛은 아니겠죠.


재미라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이것도 저것도 괜찮지만 재미있는 건 이 순간이 아니라 지나고 나서야 재미있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듯, 명란버터우동의 소스를 순서대로 뿌려 맛을 먹고 나서야 나는 어떤 버전이 제일 맛있더라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요.


사연을 읽고 재미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무형의 재미를 수치로 바꿔 생각해 보았습니다. 재미의 레벨이 100까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 때 ‘재미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고요. 70 정도가 계속 유지되는 인생이라면 재미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70이 계속된다면 그게 일상이 될 텐데, 그렇다면 재미있는 순간이 지속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그럼 50 정도의 재미로 사는 사람은 인생은 심심할 거라고 못 박을 수 있나? 상대적으로 0인 사람보다는 충분히 재미있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70인 사람보다는 덜 재미있지 않을까? 아니면 늘 70으로 사는 사람과 일상이 0이고 가끔의 50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면 재미있는 순간을 어느 쪽이 더 크게 느끼지 않을까. 등등.


재미를 수치화할 수도 없고, 완벽하게 정형화시킬 수 없으니 아무래도 익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재미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남들이 다 경험해 보고 이야기해 오고 쌓여온 선택지가 있으니까요. 한 그릇의 비빔우동을 먹으면서도 설명서와 무관하게 슥슥 비벼 먹을 수도 있지만, 설명서대로 정형화된 3가지를 즐길 수도 있죠. 재미를 느낀다는 건 어쩌면 상황을 대하는 태도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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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다면 아래로 보내주세요.


요리하는 광장장은 고민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고요, 책 쓰는 짐송은 고민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려요.

사연이 실리게 되면 광장에서의 식사시간을 갖거나 짐송님의 추천 책을 보내 드립니다.

사연은 익명 참가도 가능합니다. 사연이 모이면 출판도 기획하고 있으며, 보내실 때 출판 동의/비동의 여부도 함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양한 사연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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