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쉬지 못하고 걱정을 사서 하는 제 스스로가 요즘 너무 가여워요.
남들 다하는 휴학도, 해외여행도 안 하고 칼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면서 20대 후반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살아온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난것도 없고, 이룬 것 역시 없는 거 같아 자꾸만 남과 비교를 하면서 저를 깎아내립니다. 물론 각자의 고민이 다 있을 거고 보이는 게 다는 아니겠지만 맘처럼 쉽게 생각정리가 되지 않네요. 이로 인해 건강은 말도 못 하게 안 좋아져서 대학병원 응급실을 집처럼 다니고요. 더 큰 문제는 몸이 안 좋아졌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좀 쉬어야 하는데, 가뜩이나 그저 그런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적은 월급으로 간간히 살아가는 중인데 이런 이유로 그만뒀다 다음 직장을 못 구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저를 계속 좀먹게 하는 거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뭔가 벌 받는 느낌이 들어 우울하고 회사에 나오면 일과 건강 스트레스 때문에 또 우울하고요.. 이쯤 되면 스스로가 우울함을 찾아가는 거 아닐까요?
저 정말 어쩌면 좋죠?
책 추천 이진송 작가
안녕하세요, 애 님. 입시나 취업처럼 ‘골인’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참 인생이 그렇지 않죠.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막막하고 허무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비교라는 괴물은 번번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안에서 몸집을 키워서, 솜털만큼 자라난 자존감이나 행복을 와구와구 먹어 치워 버리고요.
‘번 아웃’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까요? 모든 것을 다 태우고 소진된 느낌이 든다고 해서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아마 애 님이 겪고 계신 증상들도 이러한 번아웃 증후군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건강이 악화되어 응급실에 자주 갈 정도면 이제는 정말 ‘뭐라도’ 해야 할 단계인데 또 그 마음 때문에 초조해지잖아요. 저도 작년에 비슷한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뭔가 벌 받는 느낌’이 드는데, 또 일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우울해지는 딜레마는 정말 뻘에 빠져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느낌. 가까이 있다면 애 님을 꼭 안아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당시 인터넷 사용을 끊고 심리상담을 받았는데요. 매주 상담실에서 휴지에 눈물 콧물을 묻혀가며 처음으로 나도 외면하고 있던 나의 ‘기분’과 내 발 밑을 발견했답니다. 내 발 밑이라는 표현은 지금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었는데요. 저도 너무 비교에 급급해서 늘 목을 쭉 빼고 남들은 뭘 얼마나 이루었나, 나는 왜 저기까지 가지 못하나, 더, 더,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더라고요. 내가 가진 것들은 내 눈에는 안 찰 수 있지만, 나만의 맥락과 환경에서 쌓아왔기에 지금의 나를 이루는 고유함인데 말이에요. 사실 자기 눈에 차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기도 하고요.
애 님. 지금까지 정말 잘해오셨어요. 그리고 애 님은 분명 스스로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남들이 애 님을 부러워할 멋진 점을 갖춘 분일 거예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할 필요가 있답니다. 남들에게 하지 않을 말이나 생각은 스스로에게도 돌려주지 않는 식으로요. 애 님은 휴학도, 해외여행도 없이 칼 졸업하고 취업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남에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난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역시 없다’라고 평가하지는 않을걸요. 봐요. 얼마나 대단하고 기특해요. 그런 사람이 조금 쉬고 싶어 한다고 해서 벌줄 수 있겠어요?
애 님에게, 노지양 번역가의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북라이프, 2018)을 추천하고 싶어요. 번역가의 에세이답게 영어 단어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형식이 재미있어요. 열등감이나 우울감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꼭 내 맘 같기도 하고요. “happily ever after”는 “그 후로도 행복하게”라는 뜻인데,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후 “나의 이야기는 아직 쓰고 있는 중이며 엔딩까지는 한참 남았으니까.”라는 코멘트를 붙였어요. 입시가, 취업이 해피 엔딩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여전히 끝을 모르는 레이스 중인 우리. 아직 쓰이는 중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이 마라톤에서 어쩌면 지금이 수분을 보충하고 페이스를 낮춰줄 때인지도 몰라요.
코로나 시국인 만큼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감히 조언을 드리기는 어렵겠지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대신 휴식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휴며드는’ 시도를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수영장에 들어갈 때 발부터 물에 적시듯 궁금하던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천천히요. 저도 쉬려고 할 때마다 죄책감과 번번이 씨름을 한 판 해야 했는데, 이게 이게,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인 거 있죠. 애 님, 혹시 자전거 타실 줄 아세요? 자전거를 처음 탈 때랑 비슷한데, 휴식도 비틀비틀 넘어지고 때로는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에게 딱 맞는 형태와 느낌을 찾게 되더군요.
비교도 결국 더 잘 살아내고 싶은, 삶을 향한 애정과 성실함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것이 지금 애 님을 너무 찌르고 있으니 조금 내려놓고, 휴식을 연습하면서 ‘쉬는 나’를 발견해 보아요. 자책하고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일부러 과장되고 요란하게 ‘내 편’을 들어주면서요. 빼곡했던 애 님의 일상 여기저기 작은 쉼표를 찍는 것부터, 같이 시작해볼까요.
요리 추천 김광연 셰프
애님의 글을 읽고 저는 20대 중반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지방의 전문대에서 조리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식당에 취직을 했습니다. 조리사라는 직업 자체가 이직이 잦으니 그럭저럭 다음 회사, 다음 회사를 옮겨 다녔지만 첫 회사 이후로 1년을 채운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어요. 늘 몸이 고장 났거든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염증이 생겼어요, 발목에.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하기도 했죠. 하지만 회사만 그만두면 괜찮아지니까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이력서를 내고 회사로 들어갔어요. 몇 번을 반복하다가 못해 먹겠다 생각하고 굶어 죽어도 요리를 다시 하는 일은 없을 거다 하고 그만뒀어요. 몸의 문제뿐 아니라 체질적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대책은 없었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원하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두 달 반 동안 친구가 유학 가 있는 호주의 한 시골 마을에 머물렀어요. 그때 호주 여행에서 깨달은 건 아.. 난 자연에 감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구나 정도였어요.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돈을 다 쓰고 한국에 오자마자 일을 해야 했죠. 하지만 조리 전공에 조리 경력이 전부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흔히 생각하는 아르바이트밖에 없었어요. 구직 사이트에서 초보를 구한다는 많은 일들에 무작정 이력서를 냈어요. 일이 일로 연결되기도 하고 그 1년 동안 10개가 넘는 직업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투잡도 뛰었고 프리랜서로 틈틈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도 하고요. 마치 어떤 일이든 맡아서 하는 홍반장처럼 어느 누가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뛰어가서 해 보는 한 해였어요.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지 알게 되었고 일을 하면서 어떤 경험에 가치를 두는 지도 알게 되었어요. 하루 이틀 만에 그만둔 일도 있고 그때 시작한 걸 계기로 10년 가까이하게 된 일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제가 경험한 시절은 지금의 혹독한 시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취직을 하는 것 자체도 비교할 수 없이 어렵기도 하고요. 사회적 환경도 그때와는 다르지요. 하지만 일 자체에만 집중해 보면 애님의 상황은 제가 요리를 그만두고 다시는 안 하겠다, 내가 굶어 죽어도 칼을 잡거나 프라이팬을 돌리진 않겠다 하고 결심할 때만큼 고통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일단 시간은 내 페이스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사회에서 숨 고르기를 하기도 전에 다음 퀘스트가 닥쳐오고 있으니 어떻게든 깨고, 넘겨야 되잖아요. 그런데 앞서도 숨을 고르지 못했으니 다음 퀘스트, 그다음 퀘스트는 버거울 수밖에 없어 쓰러졌던 것 같아요. 업무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사회적 상황, 위치, 경제적 여력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말이죠. 어디든 한 군데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나, 인 것 같아요. 어디도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돌보는 시간은 무조건 필요합니다.
따뜻해지기 시작한 봄이지만 채소로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고 또다시 채소가 듬뿍 들어간 광장의 베지테리안 누들 스프를 준비하고 말을 이을게요. 든든하고 따뜻하면서도 속을 부대끼지 않게 해주는 메뉴거든요. 꽤 양이 많아서 먹는데 한참이 걸려요. 버섯도 먹고, 청경채도 먹고, 대파도 먹고 튀긴 두부도 함께 곁들여 면을 후루룩 후루룩 먹습니다. 그 모든 것이 소금과 후추로 모여 하나의 부드러운 맛을 선사해요. 든든히 한 끼를 먹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깊이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경험해 보지 않아도 막연히 로망하는 것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면요. 돈을 벌어야 하는 나, 회사에 출근해야 되는 나, 누군가를 신경 써야 되는 나, 카드 값을 맞춰야 하는 나, 막막한 나, 그런 거 말고요. 울고 싶은 나, 자고 싶은 나, 노래를 부르고 싶은 나, 춤을 추고 싶은 나, 친구와 수다 떨고 싶은 나, 달리고 싶은 나,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나에 대한 것들이요. 그중에 떠오르는 것에 내 시간을 조금 더 들이는 거예요. 나를 위한 가만한 생각의 시간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공을 들이는 시간이에요. 가만히 생각 속의 나로 유영해 가는 것, 그것 자체로 나를 위한 개발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애님의 죄책감에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할 일이 많이 있을 때 근데 머리가 복잡해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때 게임을 합니다. 단순한 퍼즐게임 같은 걸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해요. 게임 하트가 없어지면 비슷한 류의 다른 게임을 다운받아서 마냥 앉아서 폰을 보고 게임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 이제 뭘 해봐야지 하는 기분이 들어요. 손과 눈으로 게임을 하면서 푹 쉬었던 머리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계획을 짜게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게임을 합니다. 언젠가는 게임하는 시간이 너무 한심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일부러 게임을 켜기도 해요. 애님의 사연에 너무 감정 이입이 되어 벌써 두 시간을 게임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무슨 말을 해 주면 좋을까 하는 다정한 생각과, 꼰대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기분 사이에서 꽤 방황하며 저의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게 되네요.
조금 따뜻해지면 광장의 창은 녹색으로 물들어 도심 속 숲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거기서 베지테리안 누들 스프를 든든히 먹고 나와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랄게요.
고민이 있다면 아래로 보내주세요.
요리하는 광장장은 고민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고요, 책 쓰는 짐송은 고민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려요.
사연이 실리게 되면 광장에서의 식사시간을 갖거나 짐송님의 추천 책을 보내 드립니다.
사연은 익명 참가도 가능합니다. 사연이 모이면 출판도 기획하고 있으며, 보내실 때 출판 동의/비동의 여부도 함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양한 사연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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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로 가면 조금 더 간편하게 사연을 남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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