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비혼여성이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은 어딜까요

by 광장장

사연자 : 제제


안녕하세요 현재 동거 중인 20대 초 레즈비언 커플입니다. 저는 이제 4학년이고 애인은 졸업해서 취업준비를 하는 중인데 앞으로의 삶에 많이 걱정이 돼요. 둘 다 미술대학을 나와 앞으로 작업에 중심을 두고 살아갈지, 아니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최대한 일에 집중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비혼 여성 둘이 함께하는 지속적인 삶이 가능할지 불안해집니다.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저희가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 같은 게 걱정이 돼요. 비혼 여성 선배이신 두 분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책 추천 이진송 작가


비과학적일지도 모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요. 제가 친언니와 점을 보러 갔을 때, 점을 봐주던 분이 언니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네 동생 포기해. 얘는 너처럼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못 살아.” 저를 내심 답답해하던 언니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날 들은 말은 우리 자매의 선명한 차이를 얼마 간 연결하는 심리 상담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 출퇴근과 글 쓰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시간을 운용하는 능력이 부족한 저에게는 일정한 루틴이 필수더라고요.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결국 질문자님이 가장 적절한 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작업에 몰입하는 편이 좋은지, 아니면 저처럼 무관한 일을 해야 오히려 작업에 탄력이 붙는지, 삶의 목표로 삼는 행위의 지속성은 무엇인지, 안정적인 수익과 정서적 만족도가 얼마나 밀접한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또 모든 선택이 양자택일은 아니고요. 우리는 ‘현실에 패배해서 꿈을 포기’한 구도에 너무 익숙한데… 이건 꿈을 포기하면 속물 인양 꿈을 좇으면 철없는 공상가 인양 몰아붙이는 세상 탓이 크죠. 아, 어쩌란 말이냐 정말. 하지만 정말로 꿈과 생계 노동은 반드시 대립하고, 포기와 선택의 영역일까? 글쎄요. 저는 글을 쓰고 출근을 하고, 광장 사장님도 요리를 하고 책 쓰고 번역을 하고 있어요. 우리 주변에는 통념보다 더 생생하고 다양한 삶들이 있죠. 질문자님의 성향과 주변의 환경, 조건 등 여러 요건을 차근차근 고려하고 검토하셔서 여러 가지 플랜을 A, B, C 버전으로 짜 보세요.


정한아의 『달의 바다』 속 주인공은 번번이 언론 시험에 낙방하다 미국에 있는 고모를 만나러 갑니다. 때로는 가혹하고 치사한 현실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하고도 강인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요. 조금 더 현실적인 팁을 원한다면, 신예희의 『지속 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도 추천합니다.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작가의 프리랜서 생활이 가득 담겨 있어요.


레퍼런스가 없는 삶을 산다는 건 여러모로 두려운 일이에요. 그 공포는 사람들을 규격화된 삶의 형태로 몰아넣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질문자 님과 저의 조건이 많이 다르기에, 섣불리 ‘비혼 선배’로서의 어떤 조언을 건네지 않으려고요. 기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이 ‘정상’ 바깥의 삶을 조여 오는 손아귀 힘에 같이 저항하며 바위에 계란을 던지자고 손을 내밀고 싶네요. 생활동반자법을 적극적으로 파고든 따끈따끈한 신간, 『외롭지 않을 권리』를 함께 읽으면서요.



요리 추천 김광연 셰프


취업과 미래, 삶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무거울 시기에 사회적 정상성 밖의 무게까지 더해진 사연이 며칠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고민에 대한 처방을 우리답게 추천해 주자는 기획으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잘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그 행간에 있는 한숨들이 하나하나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에 대한 답보단 고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게 속이 따뜻해지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졌어요. 맛이 강하지 않은 육수에 먹고 싶은 재료를 하나하나 담가 각자 취향에 맞는 소스에 찍어먹는 샤브샤브가 생각났습니다. 고기는 얼마나 익혀야 할지, 채소는 무엇부터 넣을지, 살랑살랑 흔들어 익혀 먹으면 되는 것부터 푹 익혀 축 늘어질 정도로 육수를 잔뜩 머금은 맛을 선사하는 재료들을 하나하나 갈음하며 먹지요. 함께 한 냄비를 이용하며 각자의 음식이 되는 이 요리는요.

삶이라는 거대한 냄비 속에 담긴 우리는 각자의 성향을 가지고 각자의 입맛대로 살아갑니다. 안정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고 흔히 얘기하면서요. 하지만 세상은 흑과 백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서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씩 내딛거나 뒷걸음질 치며 치열하게 나의 회색지대를 꾸리게 된다면 조금은 안정적인 3,40대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기꺼이 할 수 있는 것과 절대 할 수 없는 것. 견딜 수 있는 제한과 견딜 수 없는 자유를 하나씩 나눠 스스로를 조금 더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된다면 나의 길을 꾸리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샤브샤브 육수에 넣은 쇠고기를 색이 변할 정도로 잠깐 넣었다 꺼내지 않으면 한참을 씹어도 질겅질겅 하게 남아 넘어가지 않기도 하고, 두툼한 뿌리채소인 연근을 넣자마자 꺼내 먹으면 생경한 뿌리채소의 흙 맛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구는 질색하는 그 질감과 맛을 일부러 즐기는 사람도 있지요. 소고기는 확 익혀 씹는 고기 맛을 선호한다거나 연근의 생생하게 선 섬유질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요. 이처럼 절대 양보할 수 없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1번으로 두고 나누고 미루고 혹은 먼저 실행하다 보면 나는 자유롭게 작업을 해야겠다 혹은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일을 우선해야 되겠다의 판단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이 같은 방향으로 선택하면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든든한 파트너가 될 것이고,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면 경제적으로나 예술적인 면으로 자극과 보완이 될 수 있겠지요. 삶의 방향이 달라지다 보면 영영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갈 것 같은 불안함도 들지만,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본다면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똑같다고 더욱 깊은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제님을 위해 샤브샤브 요리를 준비하고 기다릴게요. 파트너와 함께 즐기며 의외로 너는 이런 재료를 좋아하는구나 혹은 이런 조합도 괜찮구나 하며 각자 다른 취향을 수용하는 관계를 알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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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다면 아래로 보내주세요.


요리하는 광장장은 고민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고요, 책 쓰는 짐송은 고민에 맞는 책을 추천해 드려요.

사연이 실리게 되면 광장에서의 식사시간을 갖거나 짐송님의 추천 책을 보내 드립니다.

사연은 익명 참가도 가능합니다. 사연이 모이면 출판도 기획하고 있으며, 보내실 때 출판 동의/비동의 여부도 함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양한 사연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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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로 가면 조금 더 간편하게 사연을 남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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