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청춘들이 외국으로 향한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호주로 일본으로 유럽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는 말을 인사처럼 들었던 적도 있다. 워킹홀리데이는 젊은이들에게 1년간 일을 하며 여행도 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비자다. 사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학력과 상황들에 비춰 국내보다 나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떠나는 사람들의 쉬운 선택지 중 하나였다. 단순히 해외 경험만을 생각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건 여행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15년 전, 두 달간 긴 여행으로 떠났던 호주에서의 일상들이 떠올랐다.
친한 친구가 호주로 떠났다.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들이 이미 호주로 잔뜩 향하던 시기였다. 친구의 친구도 호주에 있으니 안부를 전해 달라며 만나기도 했을 정도였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는 부모님의 지원 없이 학교를 다니느라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도 하루 종일 나와 놀아줄 수는 없었다. 친구는 그 시간을 여행 온 내가 만나서 놀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했고, 나와 함께 놀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호주로 온 여유로운 유학생이었다. 워홀러들은 영화 속 지현과 종대, 종현, 감독이 그랬듯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비슷한 나이의 블로그 친구가 있었는데 한 번도 그 친구를 따로 만나지 못했다. 친구와 인사를 나눈 건 그 친구가 일하는 일식당 일하는 시간에 식당 밖에서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일하고 있구나! 하고 손을 흔들고 지나친 게 그 친구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도 그랬다. 호텔 청소로 돈을 많이 벌어 한국에 가면 새로 대학에 진학할 거라는 이 친구도 호주를 떠나기 전날 잠깐 만난 게 전부였다. 잠을 잘 시간도 없이 바쁜 워킹홀리데이의 일상에 그때 당시에도 워킹만 있고 홀리는 없다는 걸 느꼈다.
이미 15년쯤 전이라 지금보다 더 호주와 한국의 시급 차이도 엄청났고, 영어만 할 수 있으면 한국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벌기도 했다. 그때도 지독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워킹홀리데이 세컨드 비자가 생긴 요즘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세계는 더 지독해진 것 같았다. 농장에서 일정기간 일해야 되는 세컨드 비자 조건을 맞추려 팀을 짠 네 사람은 함께 숙식하고 함께 일을 알아보며 지쳐간다. 편하고 돈을 많이 주는 블루베리 농장의 경쟁률은 엄청나서 새벽부터 줄을 서도 2천 번대 대기번호를 받아야 할 정도였고, 돈이 떨어지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농장들을 돌며 일감 사냥을 나섰다. 사냥이라고 표현하기보다 구걸에 가까웠고, 겨우 구한 일에서 잘리기도 하고, 최악의 일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가기도 한다.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채로 필리핀을 거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지현도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늘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웃었고, 사람들을 다독였다. 성격만큼 밝은 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숙소 친구들과 농담을 건네며 낄낄대던 지현이었다. 그런 지현이 울었다.
"나는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얻는 게 있고 하면 어떻게든 버텨내고 하는데 진짜 이건.. 진짜 진짜 최악. 여기서 자존감의 문제까지 가요. 아 이런 일 안 하려면 더 좋은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지금 나는 또 그럴 능력이 없구나.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지현은 좋은 일이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울었다. 과연 좋은 일이란 뭘까? 그리고 이런 일이라는 건 또 뭘까. 그들은 한국에서는 농장에서 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호주에서는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다. 쉽고 돈을 많이 준다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을 제치지 못해 생활비는 떨어져 나가고 결국 악독하기로 소문난 양파밭으로 향했다. 도무지 속도가 늘지 않고 힘만 들던 날들이 계속되던 때였다. 좋은 일을 하면 자존감이 올라갈까?
언뜻 얼마 전 대통령 후보를 위한 당내 경선 1위 주자는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명확히 구별되어 있다. 이런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는 사회를 탈출했던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별반 다를 바 없이 비슷한 현실이었다.
손발 노동을 하는 노동자로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느끼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글을 쓰는 것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타이밍에 맞춰 요리를 탁탁 내놓았을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효능감이나 보람 같은 걸 떠나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 생계를 책임져 주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생계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술집을 운영한다는 말 뒤로, 책을 냈고 글을 쓴다는 말을 붙인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 다른 온도의 대우를 마주치고 만다. 손발 노동과 지식노동은 종종 내 삶에서 주객이 전도된다.
어떤 사람은 손발 노동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된 통에 선택의 여지없이 책상 앞에 앉게 된다. 지식노동을 폄훼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걸로 나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자기를 더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내게 맞는 일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하루 만에 잘리긴 했지만 지현이 잘했던 일이 있고, 모두가 힘들어하는 양파 농장에서 적성을 찾은 종현이 있듯이 말이다. 공부가 적성인 사람은 공부를 하고, 손발 노동이 적성인 사람은 손발 노동을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빌딩 창문 닦기 알바나, 놀이동산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고, 난독증인 사람은 책을 읽거나 쓰는 일보다는 다른 일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에는 위아래가 없다, 옷이 더럽혀지지 않는 지식노동을 하면서도 썩어 문드러진 사람들의 행태를 우리는 뉴스에서 지겹도록 봐 왔는지만, 어느 하나 바뀌지 않는 걸 보면서 한국은 한국을 뜨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을 명분은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울먹이는 지현은 말한다.
"그래도 아직 나는 나를 믿는데."
과연 이 사회에서 나는 나만 믿으면 되는 걸까?
감독은 한국에서 고락을 함께한 멤버들과 한국에서 만난다. 영화는 어떻게 살라거나,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전에 호주에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관망한다. 홀리함은 없고 워킹만 있던 지나간 호주의 기억을 곱씹는다. 이희원 감독은 물론 지현, 종대, 종현은 자신의 삶과 생각을 그대로 내보이며 어른들이 바라보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지금 젊은이들의 현재를 말한다. 이제는 닳고 닳아버린 단어인 노력이나 열정을 들이밀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살아내며 각자의 희망을 담고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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